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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ay
'행촌' 에세이모음
작성자 최정순
작성일 2020-03-12 (목) 05:12
홈페이지 http://crane43.kll.co.kr
ㆍ추천: 0  ㆍ조회: 68      
어머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최 정 순





 쓰러진 지 일주일이 넘었는데도 어머니는 혼수상태다. 이승과 저승의 갈림길에서 얼마나 헤매고 계실까? 언제쯤 식구들을 알아보려는지 막막하다. 주렁주렁 매달린 링거에서 톰방톰방 떨어지는 수액이 보는 이의 마음을 조였다. 어느 세월에, 하대명년이다. 펌프질이라도 하여 막힌 곳을 뚫고 싶다. 뒤척일 때마다 주사바늘로 역류하는 피가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물 한 모금 넘기지 못하고 링거에만 의지하던 어머니가 열나흘째 되는 날 깨어나셨다. 한바탕 꿈을 꾸다 낯선 곳에 온 이방인처럼 초점 잃은 눈동자는 허공을 맴돌다 다시 감았다. 미세한 동작들이 헛짓인 것 같았다. 울며불며 안타까워하는 자식들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가 보다. 이런 어머니를 보고 문병 오신 손님마다 기적이라고들 하셨다. 그러면서도 “차라리 죽는 이만 못하다느니, 벽에 기대고라도 살아야 한다.”는 등 다들 한마디씩 수군거렸다.



 산 이도, 죽은 이도 한편이라 했던가? 살아서 좋은 꼴 못 보고 고생만 할 것 같으면, 차라리 어려운 형편에 가족들만이라도 얽매이지 않고 살아야 한다는 뜻일 게다. 힘이 부쳐 몸이 늘어진 줄로만 알았던 어머니가 반신불수란 것을 그때서야 알았다. 마지막까지 열려 있는 게 고인의 귀라 하지 않던가? 이런 말을 들은 어머니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아마 삶의 애착을 넘어 어린 자식들을 생각하면서 실오라기 같은 희망의 끈을 끈질기게 잡고 계셨을 것이다.  



 병은 하나인데 이런저런 약은 어머니와 같이 장사하시던 친구분들 수만큼이나 많았다. 양약, 한약, 단방약에서 침술까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우왕좌왕하던 차에 중풍에는‘우황청심환’이 명약인 줄 알았다. 가격도 비쌌다. 금박종이에 쌓여 보기에도 명약같아 보였다. 진한 한약냄새가 칙칙한 방안 공기까지 상큼하게 만들었다. 하루, 이틀, 그리고 한 달, 두 달, 또 일 년, 이년을 청심환을 넘기며 기다린 세월이 여러해였다. 눈이 빠지도록 어머니를 지켜보았다. 찌그러진 눈, 오그라든 손과 발, 어둔한 말씨까지, 정상으로 돌아 올 줄 알았다. 어머니를 업고 백방으로 뛰어다니던 큰동생 얼굴이 오늘따라 어머니 얼굴과 겹쳐 많이 보고 싶다.  


 ‘찰떡같이 믿었던’ 우황청심환의 역할은 여기까지였다. 예수님께서 중풍환자를 고쳐주신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어머니의 정신만은 성한사람 못지않게 살아있었다. 오롯이 하느님만이 고쳐주실 수 있다는 것을 믿고 계셨다. 약 먹는 시간은 잊을지 몰라도 종일토록 기도하는 시간이 어머니의 약이고 밥이었다.



 이럭저럭 세월은 흘렀다. 전답이며 가게도 다 팔아 버렸다. 어머니와 자식들도 이제 더 이상 바라고 말 것도 없었다. 아니 무디어졌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비정상을 정상으로 알고 살았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숱한 가시밭길을 어떻게 다 말할까? 부모가 강하면 자식도 강해진다는 말이 있다. 돌밭에 떨어진 자식들은 서로 도와가며 단단해 질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한테 떼를 쓰는 일은 사치였다. “아랫돌 빼서 윗돌 괴고, 윗돌 들어서 아랫돌 괴고” 동생이 형을 먼저 가르치고, 다음에 형이 동생을 가르치는, 이치를 따진다면 말도 안 된다. 어떻게 동생이 형을 가르친단 말인가? 그러나 우리 형제들이 살아온 방식이며 어머니의 ‘좌우명’이었다.

 

 “위기는 겹쳐서 온다.”더니 기쁨도 겹쳐서 왔다. 첫째동생은 군에서 제대하고, 둘째동생은 건설현장 사우디아라비아로 파견, 셋째 동생 역시 방직기술자로 아프리카 수단으로 떠나게 되었다. 기쁜 날인데도 벅찬 가슴을 주체할 수 없어 어머니도 울고 자식들도 울고 주인집 아주머니도 울며, 멍멍이도 따라 짖어댔다. 한 달 동안 벌어들인 외화가 엄청 많았다. 이 돈을 어머니가 관리하셨다. 셋방살이에서 벗어나 전셋집을 얻고, 다시 어머니의 치료도 시작되었다. 중도에 그만둔 동생들도 다시 학교에 갈 수 있었다. 아마 어머니의 일생 중에서 가장 행복한 때가 아니었나 싶다. 그러던 어느 봄날, 갑자기 재발하여 멀리가 있는 동생도 못 보고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그렇게 빨리 돌아가시면 안 되는 것이었다. 사람이 살만하면 죽는다는 말을 누누이 들었지만 이렇게 허망할 수가 있을까? 자식이 부모 가슴에 못을 박는 일은 허다하지만, 부모 역시 자식 마음에 모진 상처를 안겨주는 일이 이런 경우가 아닌가 싶다. 어머니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동생한테 알려야 했다. 절차가 복잡했다. 서울 본사로 연락하면 다시 본사에서 사우디아라비아 현지로 연락했다. 그동안 수많은 편지가 오고 갔지만 비보를 받은 동생의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지고도 남았으리라. 동생이 집에 도착했을 때는 어머니 삼우제 날이었다. 2년 전 집 떠날 때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보고 뗏장도 마르지 않은 어머니 무덤 앞에서 통곡하던 동생! 지금도 술 한 잔이나 들어가면, 물에 찬밥 덩이를 말아 끼니를 때우던 어머니가 보이고, 홍수로 전주천 물이 불어 가게가 사라졌을 때 애통해하던 어머니의 모습이 너무도 슬퍼 마음을 종잡을 수 없으며 임종도 못 지킨 불효자라며 울먹인다. 그러면서도 어머니의 유언대로 동생들을 잘 가르쳐 혼인까지 시킨 장한 동생이다  


 오늘따라 어머니 살아생전에 하신 말들이 자꾸자꾸 꼬리말 잇기를 한다. '다른 집 자식들은 도망도 잘 가덩만!' 이 말은 공부 때려치우고 기술이라도 배웠으면 하는 숨은 뜻이 들어있지만, 새빨간 거짓말이다는 것을 자식들은 잘 안다. 자식만을 위해 태어났고 자식만을 위해 짧은 삶을 살다 가신 어머니!



 설마, 어머니 계신 곳에서도 돈 계산할 일이 있는지 평소 끼고 장사했던 큰아들을 마흔세 살에 불러들였고, 거기서도 김치를 담그시는지 돌확에 고추를 갈아주던 셋째아들도 쉰한 살에 어머니 곁으로 갔다. 지금은 상관면 저수지가 내려다보이는 양지바른 곳에 아버지와 합장하여 양쪽에 두 아들을 거느리고 계신다. 살아생전에 못다한 말, 이제 와서 한마디 외쳐보고 싶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다시 태어나도 어머니 딸이기를!"





                                               (2020.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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