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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ay
'행촌' 에세이모음
작성자 구연식
작성일 2020-03-07 (토) 13:14
홈페이지 http://crane43.kll.co.kr
ㆍ추천: 0  ㆍ조회: 91      
산수유꽃 보러 가기
산수유꽃 보러 가기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구연식





 

 지구촌 전체가 ‘코로나 바이러스-19’의 창궐로 인간의 삶을 공포의 도가니에 몰아넣고 있을 뿐 아니라 절대적인 종교의식마저 접고 있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무엇이든지 정복하여 인간 위주의 삶을 살 것 같이 기세가 등등했지만, 끔찍한 대자연의 재앙 아래서는 속수무책으로 슬슬 긴다. 정치가와 과학자들은 합리적인 묘약을 준비하느라 바쁘다.

 

벌써 몇 주째 국가는 모든 국민의 활동을 통치차원에서 규제하지만, 대유행 질병감염에 숨죽이면서 개인적 예방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적의 공습을 피하려고 지하 벙커에서 라디오 방송에 의존하며 전쟁 중의 삶을 사는 것 같다. 꽤 오랫동안 모든 생활을 규제하여 칩거로 소화해내고 있으니 울화통이 터진다. 아파트 옆 라인 아들의 집 손자도 안절부절 못하면서 학교에 가고 싶다고 투정을 부린다. 잠깐 밖에 나와서 아파트 양지쪽 정원을 보니, 인간을 빼놓고 모든 생명체는 인간들의 대재앙에는 끄떡도 하지 않고 보란 듯이 계절의 변화에 순응하고 있다. 아마도 수억 년 동안 자연을 거슬리지 않고 살아온 결과인 것 같다. ‘코로나 바이러스-19’에 쩔쩔매는 인간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산수유꽃은 작은 꽃대를 우산살처럼 받치고 노란 꽃잎을 속눈썹처럼 내밀며 웃고 있어 위안이 되고 외출을 하라고 유혹한다.

 

시내를 돌아다니면 사람들은 모두 다 마스크를 쓰고 두 눈만 말똥거려 침묵의 도시로 변한 지 오래다. 행여 거리에서 사람을 만나면 서로 미리 피하고 마주치지 않으려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인간의 순수성은 난리 때 알 수 있다더니 요사이 세태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이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 아닌 혼자 사는 동물로 변하는 것 같다. 나는 아내와 이른 점심을 먹고 부근에서 산수유로 유명한 구례 산동마을로 향했다. 작년 이때쯤 휴일에 구례 산동의 산수유를 구경 갔다가 구례 입구에서 자동차와 인파에 밀려 도로에서만 2시간가량 있다가 겨우 전주로 되돌아온 일이 있다. 오늘은 주중이고 모두 다 ‘코로나 바이러스-19’ 때문에 외출을 자제하는 때라 사람도 자동차도 없으리라는 생각으로 무조건 산동마을로 내려갔다. 자동차 전용 도로에는 모두 다 외출을 자제해서인지 물류 이동의 화물차도 승용차도 어쩌다가 한 대씩 지나간다. 이 난리 속에 사람들이 산수유 구경 가는지 알면 욕할 것 같아 산동마을을 둘러보면서도 미안했다. 산동마을 역시 사람 움직임이 뜸했고, 행정관서 앞에 담당 공무원만 얼씬거리고 있었다.

 

자동차는 구례 화엄사 입구 버스정류장에서 잠깐 쉬면서 남의 눈을 피해 화장실만 다녀와서 차창밖으로 버스정류장을 보니, 촌로 부부가 앉아서 버스를 기다리며 우리 쪽을 보는 것 같아 주차장을 재빨리 돌아 나오려는데, 일전에 내가 민원서류를 부탁했던 고향 면사무소에서 근무하는 여자 제자한테 전화가 왔다.

"선생님, 부탁하신 서류가 다 되었어요. 그리고 요사이 ‘코로나 바이러스-19’가 무서우니 외출보다는 집에서 건강을 챙기세요."

"응, 고마워. 집에서 꼼짝하지 않고 TV만 보고 있어. 염려 마."

산수유 구경 나온 것을 숨기니 미안했다. 아내도 나를 힐끗 쳐다보더니 피식 웃는다. 그러나 저러나 남의 눈을 피했든 양심을 속였든 이 난리 통에 구례까지 산수유꽃을 보러 왔는데 남들 의식하다가 그냥 가는 것 같아 전주로 올라갈 때는 가장 안전속도로 자동차를 몰면서 도롯가에 핀 산수유꽃을 보면서 갔다.

 

구례 들녘을 바라보니 세상 사람들은 파리 목숨 같은 삶을 조금 더 부지해보자고 새벽부터 마스크를 사려고 장사진을 치고 있다. 그런 삶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듯이 땅을 갈고 씨 뿌리는 것만이 삶을 유지하는 수단이라며, 농부들은 밭두렁에서 검정 폐비닐을 연신 걷어 내고 있었다. 그 검정 폐비닐들이 바람에 나부껴 어느 상여 뒤를 따르는 만사(輓詞)의 깃발처럼 출렁거리고 있었다. ‘코로나 바이러스-19’로 죽어가는 인간들을 의미하는 묘한 뉘앙스로 다가왔다. 밭과 산기슭에 노랗게 물든 산수유를 바라보니 며칠 동안 움츠렸던 스트레스가 날아가는 듯했다. 이따금 돌풍이 불어 산수유나무 사이에 피어 있는 매화꽃 가지들이 일부러 휘청거리며 산수유만 보지 말고 매화꽃도 보고 가란다. 먹는 것도 보는 것도 한정된 것을 서로 먹으려고 보려고 하지, 이렇게 지리산 자락에 지천으로 흩어진 산수유꽃을 나 혼자만 보려고 하니 더 보고픈 욕심도 없다. 그래도 눈을 들어 자세히 보니 조금 더 바람막이 양지쪽에는 산수유가 흐드러지게 피었고, 북풍받이로 오뚝하게 서 있는 나무들은 검은 가지에 듬성듬성 노란 점만 찍고 있어 아직은 만개의 계절이 아닌 것 같았다.

 

참 세상 살기 어렵다. 남을 의식하니 내가 살기 불편하고, 나만 살려니 양심이 따라다니면서 나를 감시한다. 언제인가는 ‘코로나 바이러스-19’가 평정되겠지만, 인간들은 변덕스러운 양심을 숨기고 천연덕스럽게 살아가는 모습이 가증스럽다. 나 혼자만 살겠다고 새치기하며 마스크를 사는 인간들, 오늘의 재앙을 반성하지 않고 또 내일도 오늘처럼 산다면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를 포기하고 인간과 원숭이의 공동 조상인 드리오 피테쿠스(Dryopithecus)로 돌아가 살자는 것과 같다. 하기야 이 난리 통에 나들이 나갔던 나는 인류 진화의 어떤 유형에 속할까?

                                                             (2020. 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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