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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ay
'행촌' 에세이모음
작성자 김성은
작성일 2020-03-04 (수) 10:41
홈페이지 http://crane43.kll.co.kr
ㆍ추천: 0  ㆍ조회: 93      
열 살 유주의 발렌타인 데이
열 살 유주의 발렌타인데이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김성은









외동딸 유주가 2학년을 마쳤다. 떨리는 마음으로 생활통지표 봉투를 열었다. 흥이 많아서 율동과 노래를 잘 한다고, 호기심이 많아 과제 수행 속도가 다소 느리지만 끝까지 완수하려는 노력이 예쁜 학생이라고 씌어 있었다. 유주의 성향을 정확하게 꼬집은 담임 선생님의 문장에서 1년 간의 노고가 묻어났다.

학급 발표회에서 20명의 학생들이 리듬악기 협주를 능숙하게 뽐내던 현장이, 순서에 맞춰 각자의 장기를 자율적으로 발표했던 악동들의 질서가 생각났다. 노란 바나나를 손에 들고 '바나나 알러지 원숭이' 춤을 췄던 유주가 열 살이 되었다. 승단 시험을 앞두고 매일같이 두 시간 운동에 주말까지 특별 수련하는 유주는 도복이 참 잘 어울리는 어린이다. 바비인형보다는 슬라임을, 소세지 반찬 보다는 구운 김치 곁들인 삼겹살을 좋아하는 유주가 태권도 숙제라며 품세 연습을 촬영했다. 혼자서 거치대에 휴대폰을 장착하고 태극 1장부터 8장까지 자못 진지했다. 이마와 등줄기에 흥건하게 땀을 흘리며 완성한 동영상을 의기양양 큰사범님에게 보내달라고 했다.

휴대폰을 조작하는 손이 제법 능숙했다. 2학년 2학기부터 재미로 촬영한 유튜브 영상 덕택인지 유주는 친구들과 패이스톡이며 카톡을 무리 없이 주고 받는다. 한가로운 토요일 낮, 유주가 단짝 친구 솔이와 패이스톡으로 통화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유주야, 뭐 해?”

“응, 나 그냥 슬라임 만지고 있어. 넌 뭐 해?”

“심심하다. 그치?  우리 놀이터에서 놀래?”

“응, 나도 나가고 싶은데, 엄마가 미세먼지 때문에 오늘은 밖에 나가면 안 된대.”

미세먼지는 외동으로 크는 초등학생들의 즐거운 주말까지 훼방을 놓았다.

“유주야, 우린 동생이 없으니까 외롭지? 너 혹시 좋아하는 남자애 있어?”

“응 글쎄…. ”

“누구 있어? 내가 아무한테도 말 안 할게.”

“응 사실 있긴 한데, 너 진짜 아무한테도 말 안 할거야?”

“응, 약속할게.”

“난 희동이가 괜찮더라.”

“왜?”

“그냥 웬지 조용하고 얌전해서 좋아.”

본의 아니게 듣게 된 초등학생들 대화에 피식 웃음이 났다. 만년 말괄량이인 줄 알았던 유주의 시선이 얌전하고 조용한 친구에게 머물렀다는 사실이 신선했다. 마침 발렌타인데이가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짐짓 아무것도 모르는 척 유주에게 물었다.

“유주야, 발렌타인데이에 초콜렛 주고 싶은 친구 있어? 같이 초콜렛 하러 가자.”

“엄마는 아빠 줄거지?”

“응, 그래야지.”

“엄마, 난 주고 싶은 친구가 있는 거 같기도 하고, 없는 거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어.”

머뭇거리던 유주가 한 개는 아빠를 주고, 한 개는 친구를 주겠다며 초콜렛 두 개를 주문했다.


태권도에서 매일 같이 하원하는 친구를 염두해 둔 것 같았다.“도복을 입고 허리에 빨간띠를 맸다. 두툼한 패딩 점퍼 주머니 속에 네모난 초콜렛을 넣었다.

“엄마, 나 용기가 안 날 것 같아.”

“가지고 있다가 유주 마음이 시키는대로 해. 못주겠으면 그냥 오면 되지 뭐.”

과연 유주는 초콜렛을 그 친구에게 건넸을까?

수련을 마치고 집에 올라온 유주에게 당장이라도 묻고 싶었지만 유주가 먼저 말할 때까지 기다려 보기로 했다. 평소와 다름 없는 유주의 컨디션을 살피며 저녁을 먹었다. 샤워를 할 때까지도 유주는 별다른 말이 없었다. 결국 내가 묻고 말았다.

“유주야, 초콜렛 친구 줬어?”

짧은 답변이 돌아왔다.

“어, 그냥 나 작은 사범님 드렸어. 좋아하시더라.”

주머니 속에 초콜렛 하나를 하원 친구에게 줄까 말까 망설이다가 불쑥 여자 사범님께 건넸을 작은 손은 빨간 단풍잎 같았으리라.

봄바람 같은 설렘으로 다가온 소녀의 발렌타인데이가 예쁘게 저물고 있었다.

                                                                          (2020.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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