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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ay
'행촌' 에세이모음
작성자 한성덕
작성일 2020-03-04 (수) 05:57
홈페이지 http://crane43.kll.co.kr
ㆍ추천: 0  ㆍ조회: 82      
스위치를 끄는 엄마
스위치를 끄는 엄마

                                                                                  한성덕









 우리 엄니는 1925년 5월 5일생으로 만 95세시다. 36년의 일제강점기와 6.25한국전쟁을 겪으셨다. 정서적으로 상흔(傷痕)이 있을 법도 한데 전혀 그렇지 않다. 자식으로서 감사한 일이다. 지금도 어머니는 외할머니의 독실한 기독교신앙을 퍽 자랑하신다. 어려웠던 고비 고비를 믿음으로 이겼다고 누누이 말씀하신다. 외할머니의 돈독한 신앙을 엄마가 고스란히 물려받고, 나와 내 자녀로 이어졌다.  험악한 세상이어서 상서로운(祥瑞) 일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여기, 암울한 세상에서 다져진 엄마의 철학적(?) 소양을 본다.

 “인생이란 허무하구나. 청춘이란 세월은 어느덧 떠나고, 힘든 걸음에 숨가쁘게 걷다가 쉰다. 숨을 내쉬면서 멈추는 몸체에 눈물이 나고, 노체를 생각하면 더 눈물이 나네요. 이제는 꿈도 사라지고 그날그날 살아가지요.”

 찢어진 한 조각 종이에 써 놓은 어머니의 글을 발견했다. 비단 우리 어머니만 가시는 길일까마는, 글을 접한 아들의 심경이 몹시 아렸다. 엄마의 어릴 때는 어떻게 불을 밝혔을까? 아마 촛불이나 호롱불, 또는 등불대용으로 관솔을 많이 사용했을 것이다. 소나무 송진이 엉겨 붙어 단단한 게 관솔이다. 불이 금방 붙고 비교적 오래 탄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관솔을 잘게 쪼개서 사용하는 걸 보았다. 양초나 석유를 절약하던 시대에 전기가 불을 밝혔다. 오랜 세월동안 절약이 몸에 밴 우리 어머니로서는, 전깃불은 어마어마한 낭비였을 것이다. 옛날 어른들이 그러하듯, 우리 엄마도 근검절약이 몸에 배어있다. 그게 절약의 힘이 되어 감사하지만, 더러는 측은하게 다가와 가슴이 찡할 때가 있다. 그 어려운 시대에 갖은 풍상을 겪은 탓인 걸 어찌하랴?  

 작년 7월말부터 금년 설날까지, 이틀에 한 번 꼴로 엄마에게 갔었다. 소위 노치원에 다니시는 어머니를 챙겨드리기 위해서였다. 전주에서 무주 쪽으로 4,50분 거리에 우리 집이 있다. 설날이 지나면서 주말에는 동생이 엄마와 함께 식사를 하고, 나는 주초에 가서 자고 온다. 엄니 젖을 만지작거릴 나이가 훨씬 지나서 엄마 침대와 상관없지만, 어머니 곁에서 하룻밤을 지내는 게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다만, 이 기쁨이 언제까지 갈까 싶어서 가슴이 먹먹할 때가 있다.

 입춘이 고개를 갸웃거리던 무렵이었다. 산골의 겨울밤은 아직도 코끝이 시렸다. 전기장판은 좋으나 거실의 싸늘한 공기까지 데우기는 역부족이었다. 이불로 얼굴까지 뒤덮고 잠을 청했다. 몇 시쯤 되었을까? 바닥은 썰렁하고, 냉기는 코끝을 간지럽히며, 몸은 으스스 떨렸다. 새벽 3시경인데 전기장판스위치가 꺼졌다. 내 덕을 보려는 게 아닌가? 잠결에 껐구나 싶어서 다시 켜 놓고 잤다. 6시에 일어나 몸을 뒤척거리고 있었다. 엄니가 거실로 나오시며 행여 큰아들이 깰세라 조심조심하셨다. 화장실에 가실 줄 알았는데 스위치를 끄는 게 아닌가? 잠결에 저지른 어설픈 짓으로 여겼다가 엄니의 ‘절약’이었음을 알았다. 은근슬쩍 화가 나 ‘엄마!’하고 냅다 소리를 쳤다. 자는 줄 알았다가 느닷없는 고함소리에 화들짝 놀라셨다. 그만했어야하는 건데 "스위치를 끄면 어떡해요? 큰아들 얼어 죽겠네." 후렴까지 해버렸다. 물론, 소리를 꽤 누그러트렸지만, ‘난 좋은 자식이 못되나보다’ 하는 생각이 이명처럼 윙윙거려서 걸쩍지근했다. 그런 후회를 하면서도 쫑알거리고 있었다. ‘절약도 어지간하셔야지!’ 하고 말이다.  


 자식은, ‘100가지를 잘했어도 잘못한 그 한 가지 때문에 불효자’가 되나 싶었다. 그제야 비로소 그걸 깨닫고 가슴이 먹먹했다. 엄마의 절약정신은 100년 가까운 세월에서 터득한 지혜다. 기껏해야 60대 중반을 살면서 그거하나 이해 못하고 있으니 ‘자식이랄 게 있나?’ 싶은 생각에 콧잔등이 시큰거렸다.

                                         (2020. 3. 1. 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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