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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박인경
ㆍ작성일	2010-02-17 (수)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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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
핑크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박인경

아침 햇살을 받은 핑크빛 커튼이 화사하다. 열린 창문으로 불어오는 바람에 분홍색 꽃무늬들이 너울너울 춤을 춘다. 봄의 꽃밭을 보는 듯하다. 나는 분홍빛이 좋다. 그러다 보니 집안의 물건 중에 분홍색이 많다. 커튼은 물론이고 침대보와 이불, 주방의 집기와 그릇들도 온통 핑크빛깔이다. 옷마저도 분홍색으로 입고 싶지만 주책이지 싶어 삼간다. 누가 놀러 와서 보면 신혼집이냐고 묻겠지만 서른 살이나 된 아들을 둔 중년아줌마가 사는 집이다.

보통 분홍색은 소녀들이 가장 좋아하는 빛깔이다. 초등학교 3학년인 여자조카가 있다. 그 녀석이 하고 다니는 것을 보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핑크색 일색이다. 머리띠를 비롯하여 머리핀, 옷은 물론이고 책가방과 신발도 분홍색이다. 분홍은 연분홍, 진분홍, 꽃분홍, 선홍으로도 불린다. 영어로는 핑크(pink)다. 채도가 조금 낮은 인디언 핑크도 있다. 분홍색이 어울리는 계절은 봄이다. 그것도 이른 봄에 수줍은 양 함초롬히 피어나는 꽃은 분홍색 꽃이다. 봄에 피는 분홍꽃에는 벚꽃과 패랭이꽃, 진달래꽃, 복숭아꽃이 있다. 춥고 길었던 겨울을 보상이라도 하는 것처럼 자연은 우리에게 분홍색을 선물한다.

분홍은 여성을 상징하기도 한다. 건강하고 투명한 피부를 분홍빛이 돈다고 표현하고, 복숭아 빛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봄이 되면 핑크색 화장법이 유행한다. 분홍색 맆스틱을 바르고 핑크색 볼연지도 칠한다. 여린 젊음을 느끼고 싶어서다. 핑크빛이 이렇듯 싱그러운 젊음을 의미하는 까닭에 요즘에는 희한한 약품까지 나왔다. 입술이나 팔꿈치, 무릎 부분에 바르면 분홍색으로 착색이 되는 크림이 잘 팔리고 있단다. 이는 핑크빛 피부를 갖고 싶은 여자의 심리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기도 하다.

여성들이 특히 분홍색을 선호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옛날 수렵채집시대부터 남자들은 사냥을 하고 여자들은 과일을 따서 먹을거리로 삼았다. 여자들은 잘 익은 과일을 찾아내고 건강한 피부색을 감지하기 위해 붉은 계통의 색을 식별해 내는 능력이 발달하게 되었다고 한다. 과학자들이 연구한 결과 남성들은 푸른 계열을, 여성들은 분홍 계통을 좋아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예전에는 결혼식을 하기 전에 약혼식을 거행했었다. 이날 입는 옷의 대부분은 분홍색 한복이었다. 나는 특이하게 서양식 핑크 드레스를 입었지만. 최근에는 결혼식이 끝난 뒤 신혼여행을 떠나는 자동차에 핑크색 리본과 조화(造花)로 장식을 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결혼 첫날밤에 입는 잠옷도 분홍색을 주로 선택한다. 흰색과 마찬가지로 분홍색이 순결한 아름다움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젊은 남녀가 남모르게 숨어서 하는 사랑의 소문을 '핑크빛 염문설'이라고 표현한다. 은밀하게 하는 사랑이 수줍지만 더욱 달콤해서일 게다. 사랑하는 마음을 글로 담는 것도 '핑크빛 사연'이다. 술집에서 파는 칵테일 중에 '핑크 레이디'라는 술이 있다. 이것을 마시면 상큼한 숙녀가 될 것만 같다.

늦은 나이에 이토록 분홍색이 좋아 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간이 흐르며 점차 퇴색되어 가는 내 모습이 안타까워 조금이나마 지나가버린 세월을 잡아 보려는 중년여인의 애처로운 발버둥인 것이다. 봄날이면 나는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라는 노랫말을 흥얼거리곤 한다. 봄이 다시 찾아오면 하늘거리는 분홍색 치마를 입고 부드러운 봄바람에 치맛자락을 날리며 걷고 싶다.

(2010.0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