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길에서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게 행복’이라는 말을 전적으로 공감하고 동의한다. 목사로서 ‘교인들은 좋은 목사를 만나야 하고, 목사 역시 좋은 교인들을 만나야 한다.’는 생각을 늘 했었다. 아니, 생각 자체를 넘어서 나의 신념이었다. 그 덕이었을까? 목회지마다 좋은 교인들을 만났고, 나 또한 목회를 내려놓을 때까지 좋은 목사로 각인되려고 몸부림쳤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나그네길에서 그냥 스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 중에는 이따금 만나는 사람, 종종 만나는 사람, 늘 만나는 사람이 있다. 늘 만나는 사람이야 부부나 가족 외에 또 누가 있으랴. 시간적인 제약 때문이지, 친구들을 종종 만나는 재미가 쏠쏠하다. 주변에서 좋은 관계로 지내는 몇몇 친구들과 선후배가 있다. 이들과는 만나면 만날수록 기쁨이요, 엔도르핀이 퐁퐁 솟는다. 그 만남 자체가 축복이 아니겠는가?
2008년 9월의 어느 날 아침, 아내가 전주예수병원에서 유방암 수술을 받았다. 전신마취상태에서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게 아닌가?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여 확인서에 사인을 하는데 가슴이 먹먹했다.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호출을 기다리고 있었다. 링거가 줄줄이 매달린 아내를 보노라니 억장이 무너지고, 착잡하여 온 몸이 떨렸다.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꾹꾹 참았지만 눈치도, 체면도, 염치도 없이 눈물은 그렁그렁했다. 좋은 의사가 첨단의 기기로 수술을 잘 하리라 믿으면서도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수술이 잘 못되면, 전신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하면, 그래서 영영 이별이라면, 별별 건방지고 불길한 생각이 감돌았다. 차라리 내가 아내 자리에 있어야한다는 생각도 했다.
10년이 지난 예수병원의 상황은 하늘만큼이나 달라졌다. 그때는 수술실 앞에서 조금은 기다려야 했었다. 아내와 함께 있는데도 혼자처럼 느껴졌다. 그야말로 사막 가운데 서 있는 느낌이요, 외딴섬의 두려움과 외로움이 엄습했다. 딱히 할 말도 없이 아내의 손만 붙잡고 있었다. 처녀적의 따스한 체온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일초 일초의 시간이 천년처럼 느껴지고, 심장의 고동소리는 포를 쏘는 듯하며, 혼돈과 공허가 뒤엉켜 아수라장이 된 텅 빈 가슴을 무엇에 비유할꼬?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속이 아리다.
몹시 초조하고 전전긍긍해 할 때, 완주군 운주교회 김성규 목사님이 오셨다. 평소부터 호형호제하는 관계요, 아내는 오라버니라고 부를 만큼 가까운, 아주 가까운 사이였다. 그렇지만 이 아침에 오리라고는 상상이나 했던가? 침묵 속의 냉기를 걷어내려고 주님이 오신 듯 정말로 기뻤다. 그 반가움에, 나도 아내도 눈물이 왈칵 쏟아졌으니 참았던 눈물샘이 터지고야 말았다. 새벽기도 중, ‘수술 전에 기도해주자’는 생각이 들어서 달려왔다는 게 아닌가? 시간이 많지 않음을 알고 서둘러 기도를 하셨다. 한쪽은 아내의 손을, 다른 쪽은 내 손을 잡았다. 가슴에서 데워진 눈물이 뺨을 타고 손등으로 뚝뚝 떨어졌다. 그토록 찡한 가슴이었는데 어찌 잊으랴? 그처럼 감동적인 은혜를 어떻게 다 갚으랴?
목사님은 목회에서 조기에 은퇴하셨다. 지금은 충남 계룡에 사신다. 수시로 문자를 주고받지만 보고 싶으면 그저 찾아간다. 언제든지 가고 싶으면 가고, 오라고 부르면 간다. 초조할 때 찾아 오신 이의 친근감이 이렇게도 큰가?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 고마움은 점점 더 농익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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