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 문학탐방 소식에 좀이 쑤셔왔다. 코로나에 장마가 겹쳐 답답하게 지내던 중 반가운 소식이어서, 간단한 손가방 하나를 들고 여행길에 나섰다. 한 목사님의 승용차에 올라 구수한 추억담을 벗 삼아 천릿길을 달려 목적지에 도착했다. 비 피해가 걱정되였지만 기우였다. 냇물은 힘차게 흐르고 숲은 더욱 풍성해지며 가을 속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눌인 김 환 태 문학관은 반딧불 전통공예 문화촌 중심에 자리하고 있었다. 가이드로부터 선생의 문학세계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탐방을 시작했다. 35세 젊은 나이에 요절한(1909-1944) 선생은 짧은 생애에도 학문에 정진하여 문단에 길이 빛날 순수비평문학의 지평을 열었다. 당시 우리 문단의 경향은 카프문학(★)과 친일문학에 예속되어 순수 고유 문학의 전통이 사라져 가는 현실을 과감히 배격하고, 순수한 우리 문학에 미학(★)의 기준을 세워 비평함으로써, 문단에 새로운 기풍과 방향을 제시한 선구자였다. 가이드는 선생을 민족문학의 틀을 확립하신 버팀목이요 무주의 자랑이라고 소개했다. 전시관 실내에는 비평선집과 다수의 저서와 유물이 남아 있었다. 마지막에 전시된 눌인訥人의 영롱한 눈빛(사진)을 끝으로 건너편 최북미술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고장이 낳은 화가 최 북은 산수화를 잘 그려 최 산수라 불렸고, 자를 (북北) 파자跛者하여 칠칠(七七)이라 불렀다고 하며 호는 호생관이다. 조선 영조 때 무주에서 태어난 최 북은 눌인과 달리 그림솜씨뿐 아니라 기이한 행동으로 많은 화재를 남긴 희대의 기인으로 알려졌다. 당시 회화의 주류를 이루고 있던 중국 산수화풍의 전통을 배격하고, 독창적인 진경산수화의 개척자로 ‘조형양식의 화풍을 세워’ 조선 후기 회화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인물이다. 전시관에는 100여 점의 영인본이 전시되었으며, 진품은 넉 점만이 자리하고 있었고, 특히 ‘지두해란’ 이라는 작품은 손가락으로 그린 그림이라는 설명에 자세히 살펴보니 선이 둔한 느낌을 받았다. 조선통신사로 활동하여 일본에도 많은 작품을 남겼으며, 평소 술을 즐겨 행동이 엉뚱했던 그가 ‘명사는 명산에서 죽어야 한다며 떨어졌다는 금강산 구 룡 연이’ 하얀 석고조형물로 만들어져 실내 중앙에서 일행을 맞이하고 있었다. 버슬아치의 청을 거절하며 ‘사람이 자신을 버린 것이 아니라 눈이 자신을 버렸다며’ 한 쪽 눈을 찔러 평생 애꾸눈으로 살았다는 일화가 주는 의미가 가슴을 찡하게 울렸다. 그림에 문외한이라서 진품과 영인본을 구분할 수 없었지만 전시된 작품과 연대 및 작가의 창작 기법과 기행을 엿볼 수 있어 뿌듯했다.
전시된 작품들은 작가 자신의 혼과 감정을 여과 없이 투여하여 얻은 결과물이라서, 그들이 추구한 예술세계를 해득하며 감상하기 까지는 까마득함을 느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격언을 새삼 일깨우는 기회였다. 아울러 문화 예술뿐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빛낸 명망가들의 발자취도 돌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기대해 보았다.
백운산 기슭에 자리 잡은 태권도원은 하늘이 점지해준 명당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계곡 따라 조화를 이룬 건물들이 이국적인 모습으로 다가섰다. 처음에는 다른 곳에 가고 싶은 생각이었으나 이곳을 돌아보지 않으면 후회할 것이라는 K교 수님의 권유가 빈말이 아니었음을 알았다. 시범 경기는 시간이 없어 구경하지 못하고 순환버스로 이동하여 모로레일을 타고 전망대에 올랐다. 가파른 절벽을 족히 2-30명이 넘어 보이는 사람을 싣고 흥얼대며 숲을 헤치고 하늘에 오른다. 신선의 기분으로 전망대에 올랐다. 산과 계곡이 눈 아래 쏙 들어와 천하를 얻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흐르는 바람 속에 스트레스를 훌훌 털었다. 이심전심으로 건강과 행운을 빌었으리라. 전망대를 중심으로 동북쪽을 향해 둥글게 포즈를 취하며 노을 속에 낭만을 불태웠다.
무주는 국립공원 덕유산을 중심으로 춘하추동 사계절이 아름다운 고장이다. 향적봉 철쭉, 구천계곡, 적상의 단풍, 향적봉의 눈꽃 길, 어느 것 하나 모자람이 없는 자연 유산이다. 철마다 형형색색의 빛깔로 옷을 갈아입은 처녀의 맵시에 비유되기도 하는 청정지역이다. 자연유산에 조화를 이룬 반디랜드, 문학관, 태권도원, 와인동굴, 라제통문, 양수발전소 등을 테마로 엮어 즐기면 가성 비 만점의 가족 여행지라는 생각은 나만의 생각일까? 더욱 저렴한 비용으로 푸짐한 향토음식과 머루주를 곁들일 수 있어 미련이 남았다.
여행하며 8순의 노익장들의 건강을 염려도 했으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느꼈다. 선배들의 활기찬 모습에서 부러움을 느꼈고 스스럼없이 차량 봉사와 물질적 도움을 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또한 멋진 번개팅으로 즐겁게 여행을 준비해 주신 집행부의 노고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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