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의 딸은 다급하게 112에 신고한다. “다섯 시간 전에 아버지가 유언 같은 말을 남기고 집을 나섰는데 전화기가 꺼져 있어요.” 딸과의 마지막 통화를 끝으로 휴대폰은 꺼진 상태였다. 밤새 경찰·소방대원·수색견의 탐지로 7시간 뒤인 다음날 0시 30분에 북악산 숙정문 인근에서 박원순 시장은 차가운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타살 흔적은 없다고 했다. ‘성추행’으로 피소되었다는 사실을 접하고 스스로 죽음이라는 가장 무거운 죗값으로 정죄하고 떠났다. 죽음이라는 선택을 하기 전에 피해자에게 사죄와 용서를 빌고, 사랑하는 가족의 남은 삶도 한 번쯤 생각해 보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아직도 나를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 당신보다 더 큰 죄를 짓고도 떳떳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랬습니까?
그를 서민의 대변인이라고 애도함은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 여정이 말해준다. 법조인의 꿈을 안고 상경하여 독학으로 경기고를 졸업하고 서울대에 합격한다. 그러나 입학한 지 3개월 만인 1975년 5월 고(故) 김상진 열사의 추모 시위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투옥된다. 서울대에서 제적되어 단국대 사학과에서 졸업했다. 1980년 제22회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대구지검 검사로서의 삶이 시작된다. 그러나 무소불위하다는 검사직도 ‘사람을 잡아 가둔다.’며 6개월 만에 사직하고,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는다.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권인숙 성고문 사건’, ‘미국 문화원 방화사건’, ‘서울대 우 조교 성희롱 사건’ 등 사회 약자들의 변호를 자임한다. 직장 내 성희롱이 불법이라는 인식을 최초로 갖게 한 ‘우 조교 사건’도 그가 6년의 법정 투쟁 끝에 승소를 끌어냈다.
그 뒤 '참여연대'를 설립하고, 기부·나눔에 참여하는 ‘아름다운 재단’, ‘아름다운 가게’도 설립했다. 그는 스스로 기부문화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 인권변호사, 시민운동가로 활동하며 받은 상금 대부분을 기부했고, 사외이사에서 받은 돈도 기부했다. 1989년에는 ‘역사문제연구소’가 건물 부지를 마련하는데 어려움을 겪자, 자신이 소유한 용산구 한남동 아파트와 연희동 땅을 내놓았다고 한다. 생전에 약 32억 원가량을 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장으로 취임하여서는 7개월 만에 눈덩이 같은 서울시 빚을 1조 2천억 원이나 갚았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가족에게는 6억 9천만 원의 빚만 남기고 65세의 아까운 나이로 삶을 마감했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그의 단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사람이 사는데 필요한 영양소를 예화로 들려주고 있다. 어느 날 하나님은 잘못을 저지른 ‘미하일 천사’를 인간 세상으로 내쫓으며 세 가지 질문을 주셨다. 문제의 해답을 얻을 때까지 인간들과 고생하며 어울려 살아라. 그러나 답을 얻으면 너는 다시 하늘나라로 올라올 수 있다.
‘첫째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는가?’
‘둘째는 사람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셋째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알아 오라.
그는 추운 겨울날 벌거벗은 채 세상으로 추방되었다. 교회의 담장 아래서 추위와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을 때, ‘시몬’이라는 가난한 구두 수선공이 발견한다. 그는 젊은이를 그의 집에 데려갔고, 측은한 마음이 든 아내는 옷가지도 챙겨주고 먹을 것도 주었다. ‘미하일 천사’는 그들 부부를 통하여 첫 번째 질문의 답을 얻었다. 그것은 사람의 마음속에는 "사랑"이 있다는 것이다.
‘미하일’은 ‘시몬’의 가게에서 열심히 일했고, 어느덧 주인보다도 솜씨가 좋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하인을 데리고 호화로운 마차를 탄 노신사가 일 년을 신어도 해지지 않는 구두를 만들어 달라고 거드름을 피웠다. 그러나 ‘미하일’은 그 노신사의 등 뒤에 서 있는 죽음의 사자를 보고는 구두 대신 슬리퍼를 만들며 미소를 지었다. 둘째 문제의 답도 얻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내일 일을 모른다.” 는 것을 알았다. “주인은 구두를 주문하고 돌아가는 길에 숨이 멎어 죽었어요. 이제 구두가 필요 없어요.” 하인이 전했다. 노신사에게 필요한 것은 튼튼한 구두가 아니라, 죽은 후에 신어야 할 슬리퍼였던 것이다.
‘미하일’이 구두 수선공으로 6년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웬 부인이 쌍둥이 소녀를 데리고 와서 구두를 맞춰달라고 했다. 그 중 한 소녀는 다리를 절고 있었다. 소녀가 태어날 때 산모가 그 아이의 한 쪽 발을 깔고 죽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엄마를 잃은 두 쌍둥이 소녀는 이웃집 아주머니의 따뜻한 사랑과 보살핌을 받고 귀엽게 자랐다. 그는 갓난아이를 친딸처럼 사랑으로 키웠다. ‘미하일’은 세 번째 문제의 답도 알게 되었다. “사람은 ‘사랑’으로 살아가는구나.”라는 사실을 안 것이다. 그는 천사가 되어 다시 하늘로 올라갈 수 있었다.
‘박원순 시장’은 인권변호사로 활동했기에 자신이 남의 인권을 짓밟은 사실을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덕망과 신임으로 살아왔으나 자신이 힘들 때 그들은 멀리 있었다. 남을 위하여 한 평생을 살아왔기에 가족에게 봉사할 여력이 없었다. 너무도 바빠서 가족에게 따뜻한 말 한마다 할 시간도 없었다고 한다. 변호사로, 시장으로 화려한 직함에도 힘들게 살아온 가족들은 가장을 무척이나 원망했을 것이다. 그가 사망의 골짜기에서 절망하지 않고 일어서기에는 ‘사랑’이라는 영양소가 필요했지만, 그에게는 없었다. 배낭을 메고 북악산을 오를 때, 사랑하는 아내와 딸과 아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얼마나 애통해 했을까? ‘여보’라는 말도, 가족여행 한 번도 못 갔다고 18년 전 어느 행사에서 남긴 유서에 기록되었다. 그 유서가 사실이 되었다. 가족은 얼마나 비통할까? 이제 피해자도 죽음으로 사죄한 그를 편안히 영면할 수 있도록 용서해 주었으면 한다.
“남을 위하여 산 인생만이 참으로 가치 있는 삶이다.”고 한 ‘아인슈타인’의 명언이 고인의 후손에게 오래오래 이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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