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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ay
'행촌' 에세이모음
작성자 이우철
작성일 2020-06-19 (금) 16:34
홈페이지 http://crane43.kll.co.kr
ㆍ추천: 0  ㆍ조회: 60      
학산이 주는 행복
학산(鶴山)이 주는 행복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이우철







단비가 내린 뒤 신선한 아침이다. 산 중턱까지 물안개가 자욱하다. 일찍 찾아온 초여름 날씨탓에 애타게 목말라하던 나무들은 물을 머금고 기지개를 켜며 생명력을 과시한다. 계곡에 생수가 흐르고 새소리마저 경쾌하다. 자연이 주는 비와 햇빛처럼 만물을 소생케 하며 생기를 주는 힘이 또 어디 있을까? 산속의 야생동물에게도 반가운 원동력을 제공한다.



매일아침 아내와 함께 학산(鶴山)을 오른다. 부담없이 드나들 수 있는 가까운 산이 있어 더없이 즐겁다. 송정서미트아파트를 지나 망태저수지에서는 운동하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등산로 입구에 망초꽃이 줄을 서서 환영해 준다. 언제부터일까. 비,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나무들이 쓰러져있다. 약자는 넘어지고 강자만 남는 적자생존의 현장이다. 누가 돌보거나 가꾸지 않아도 철따라 옷을 갈아입는 산은 스스로 변화하면서 수천년을 이어온 고향이다.



 중턱을 지나면 전주 미래유산으로 지정된 보광재에 이른다. 교통사정이 열악했던 시절 완주 평촌사람들은 이 길로 전주까지 시장을 다녔다. 고개 하나만 넘으면 전주 흑석골인데 그 험한 고갯길, 촌부들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지게로 짐을 지어 날랐고 채소를 팔아 어려운 생계를 이어 갔으리라. 당시는 수레도 다녔다하니 교통수단의 발달은 먼이야기가 아니다. 음침한 산길, 산짐승이 우글거리고 강도들이 나타날까봐 염려되었을 그 산길을 아이들이나 아녀자들은 마음놓고 다니지 못했을 것이다.



학산은 ‘학이 깃드는 고을’이란 뜻을 지닌 전주 서학동(捿鶴洞)에서 유래한다. 남고산을 줄기로 흘러내린 산자락이 마치 학의 날개를 닮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병풍처럼 산자락을 아늑하게 휘감고있는 지형이 평화동이란 이름처럼 평화스럽기 그지없다. 눈, 비가 와도 태풍이 몰아닥쳐도 방패막이가 되었고 예기치 않는 재해를 막을 수 있었다. 남방으로는 가까운 곳에 모악산이 있고 나들이 하기 좋은 순창의 강천산과 정읍의 내장산이 이어지고 있으니 노년에 은퇴자들이 몰려드는 지역이다.



등산은 진땀을 빼는 한고비쯤 있어야 그 맛이 있다. 보광재에서 능선을 따라 오르면 약간의 깔끄막길이 나온다. 숨이 가쁘고 오르기에 힘이 들어 등짝에 땀이 흠뻑 젖는다. 내려올 것을 뻔히 알면서도 뱃살을 줄이고 체력단련을 하다 보니 참고 견뎌야 한다. 힘들고 지칠 때 중단할까, 돌아갈까 늘 갈등이 앞선다. 어디 등산뿐이던가. 일이 잘 안풀릴 때, 사람사이의 관계가 힘들어질 때도 늘 갈등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고비를 참고 넘기면 내리막 등산길처럼 모든 일이 순탄하게 풀려지기도 한다.


 학산(해발 360m) 정상에 오르니 시원한 바람으로 몸은 날아갈듯 가벼워진다. 산 비둘기 박새들이 귀를 즐겁게 하고, 보랏빛 철쭉 개복숭아 꽃이 앙증스럽게 그 자태를 뽐낸다. 코로나19 때문에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오르내리지만 눈으로만 인사를 대신한다. 어디 낙원이 별것이던가? 몸속의 묵은 찌꺼기를 땀으로 흘려보냈으니 보약을 매일 한 첩씩 먹은 셈이다.



아내도 제법 선수가 되었다. 처음엔 중간에서 내려가기를 반복했지만 이젠 딱 한 차례 쉬고 정상까지 오를 수 있으니 장족의 발전이다. 혼자가면 빨리갈 수 있지만 함께가면 멀리갈 수 있다. 그간 묵은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하게 되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으니 좋다. 부부중 한 사람이라도 건강하지 못하면 가정의 분위기는 불안해지기 마련이니 노년에 이를수록 함께 건강해야 한다. 건강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일, 나의 건강이 가족을 위한 길임을 명심해야 한다. 정상에 오르면 으레 사과 하나를 반쪽씩 나누어 먹으니 매일 사과의 날(apple day)행사를 하는 셈이다.



능선을 타고 지곡정수장 방향으로 내려오면 소나무가 숲을 이루는 경관도 좋고 힐링하기에 그만이다. 공기는 맑고 몸은 조금 피곤해도 마음은 여유로워 천국이 된다. 나이 들면서 건강도 챙기고 부부관계도 좋아지니 아침 두 시간은 더없는 축복이다.



예로부터 집터는 배산임수(背山臨水)지형이 좋다고 했다. 산을 뒤로하고 물을 앞에 둔 곳을 말한다. 도시에 살면서 어찌 욕심을 다 챙길 수 있을까만 사는 곳에 가까운 산이 있고 계곡에 물이 마르지 않으니 노후에 이만한 곳도 없으려니 싶다. 마음이 답답할 때, 글을 쓰다가 생각이 막힐 때 훌쩍 떠날 수 있는 학산이 우리 동네에 있어서 나는 행복하다.

                                                                           (2020. 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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