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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ay
'행촌' 에세이모음
작성자 고안상
작성일 2020-06-14 (일) 05:58
홈페이지 http://crane43.kll.co.kr
ㆍ추천: 0  ㆍ조회: 67      
어느 섣달그믐날의 추억
어느 섣달 그믐날의 추억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고안상





초등학교 3학년 겨울방학이 시작되기 얼마 전, 우리 집에는 경사가 났다. 부모님께서 그리도 바라시던 귀여운 남동생이 태어난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얼마나 좋으신지 평소와는 달리 웃음 가득한 모습으로 어머니 뒷 수발에 정성을 다하셨다. 장남인 나나 내 동생들 모두 남동생을 보았다며 즐거워했다.  

그러다 내가 그리도 기다리던 겨울방학이 되었다. 나는 석산 어머니가 계시는 내장산 아래 외가로 가 방학을 보내기로 되어 있었다. 막상 어머니가 계시는 외가에 가려니, 이제 갓 태어난 남동생과 떨어져 지내야 한다는 게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이미 어머니와 지내기로 했고, 또 외사촌 주택이를 비롯 친구들과 방학을 즐겁게 보내야겠다는 마음이 날 그곳으로 이끌었다. 나는 어머니가 계신 석산 외가로 가 그렇게 겨울방학을 재미있고 신나게 보냈다.

며칠 동안 내린 눈으로 사위가 새하얀 세상으로 바뀌었다. 거기다 매서운 칼바람이 불어와 그해 섣달그믐은 세상천지가 온통 차갑고 시린 한기로 가득했다. 이번 설은 겨울방학이 채 끝나기 전에 들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이제 내일이면 내가 그리도 바라던 설을 외가에서 어머니와 같이 쇨 수 있다니 생각만 해도 마냥 즐겁고 행복했다.

아니, 그런데 이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낮이 다 되어갈 무렵이었다. 방죽안 할아버지께서 동네 어귀에서 주택이를 비롯 친구들과 미끄럼을 신나게 타고 있던 나를 보더니 웃으시며

“삼거리 이발소에서 이발을 마치고 나오다가 네 아버지를 만났다.”

라고 말씀하시지 않는가?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는 지금까지 방학 동안 내내 꿈꾸어오던 설날에 대한 기대가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걱정을 한 아름 안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귀여운 남동생 볼 생각일랑은 저만치 밀쳐두고 ‘아버지께서 이발을 마치시면 틀림없이 나를 데리러 오실 텐데.’라는 생각에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저녁이 될 때까지 오후 내내 나는 방문 한가운데 조그만 유리창으로 가끔씩 바깥 사립문 쪽을 바라보곤 했다.

 ‘이렇게 매서운 찬바람과 펑펑 내리는 함박눈을 맞으며 접지리까지 아버지를 따라 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그게 너무도 싫고 두렵기만 했다. 또 거기다 외갓집에서 준비하고 있는, 우리 집에서는 맛볼 수 없는, 설음식도 먹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나를 더욱더 큰 슬픔의 구렁 속으로 이끌었다.

제발 아버지께서 그냥 집으로 돌아가시길 바라지만 그런 기대는 해도 소용이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왜 이리도 시간은 더디기만 한지 답답한 마음 그지없었다. 지금쯤 아버지께서 이발을 마치고 이곳으로 오실 시간이 다 되었을 것 같은데 아직도 오시질 않는다. 설 대목이라 이발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가 보다 싶었다.


한편으로는 귀여운 내 남동생이 그 사이 얼마나 컸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그리고 빨리 만나보고도 싶었다. 하지만 조금 참으면 동생은 며칠 뒤 만나볼 게 아닌가?

 설음식을 장만하다 내어놓는 음식도 먹는 둥 마는 둥 온통 ‘아버지가 언제 오실까?’에만 신경이 곤두섰다. 평소 같으면 내가 그리도 좋아하던 유과나 전을 무슨 맛으로 먹었는지 모르겠다. 내 마음은 마치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황량한 벌판처럼 으스스하기만 했다. 모든 꿈이 한순간에 확 달아나 버린 느낌이랄까? 가시방석 위에 앉은 듯 불안하고 허탈하기만 했다.

점순 누나는 저녁 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밖엔 매서운 찬바람과 함께 눈보라가 세차게 내렸다. 섣달그믐 추위라고 하더니만 매서운 추위와 더불어 저리도 한없이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아버지와 집으로 가야 할 일이 참으로 걱정이었다. 늦게 오시면 이 추위 속에 어떻게 십여 리 눈길을 헤치며 가야 한단 말인가? 아니 이렇게 눈이 쌓이고 매서운 바람이 부니 자식을 생각해서라도 오시지 않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느새 저녁 준비가 다 되었는지 누나는 밥상을 차렸다. 가득 차려내 온 음식들이 내게는 별 흥미조차 주질 않았다. 이제라도 아버지가 오시면 뒤따라 나서야 하니 저런 것들은 내게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밖에는 점차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이따금 밖에서는 바람이 눈을 몰아다 앞문 창살에 세차게 퍼부었다.

저녁을 먹으라는 어머니 말씀에 넋을 잃고 있던 나는, 겨우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어머니께

“방죽안 할아버지께서 삼거리 이발소에서 아버지를 보셨대요. 아버지가 나를 데리러 오실 것 같아요.”

하고 맥없이 이야기를 꺼냈다. 그랬더니 어머니께서는

“이런 날씨에 무슨 큰일 났다고 네 아버지가 너를 데리러 오시겠냐?”

하고 걱정할 것 없다며 웃으셨다. 그리고 큰 외숙모와 형님들도 덩달아 웃으셨다.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곰곰 생각해보니, 그럴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제야 나는 휴우! 긴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밖엔 눈발이 더 거세지며 찬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그날 밤, 나는 ‘아버지께서 왜 오시지 않았을까?’ 궁금해하면서 며칠 뒤 어린 남동생과의 만남을 기대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2020.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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