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례 운조루(雲鳥樓) 공식 홈페이지 ▒

ㆍ작성자	변명옥
ㆍ작성일	2019-03-30 (토)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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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버스 기사님만 있다면
이런 버스 기사님만 있다면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변명옥

“고맙습니다.”

고속버스, 시내버스, 관광버스에서 내릴 때 꼭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내린다. 요즘에는 시내버스 탈 때도 꼭 감사하다는 인사를 한다. 내가 운전을 못하기 때문에 내가 가고 싶은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데려다 주는 기사님들이 정말 감사하기 때문이다. ‘버스요금 내고 탔는데 뭐가 감사해?’ 라고 비아냥거리는 사람이 있을지 몰라도 내 생각은 그렇지 않다. 저렇게 운전해 주시는 분이 없다면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없을 거라 생각하니 진심으로 고맙다. 특히 3시간 이상 가야하는 먼 거리를 운전하는 기사님의 노고를 생각하면 더욱 고맙다.

정읍 구시장을 지나는 버스를 탔을 때였다. 어떤 할머니가 차비를 안 내고 그냥 내렸다. 기사님이 그 할머니를 불러 차비를 내라고 했다. “왜, 차비를 내라고 해요? 보름 전부터 버스를 탔는데 다른 사람들도 다 안 내서 나도 그냥 타고 다녔는데.” 어찌나 큰소리로 당당하게 이야기하는지 나도 잠시 어안이 벙벙해졌다. 차비 내셔야 한다는 기사의 말에 그 할머니는 더 큰소리로 다 안 내는데 왜 그러냐고 따지는 게 아닌가? 참다못해 내가 “할머니, 차비 안 내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차비 내셔야 해요.” 해도 못 들은 척하고 자기 말만했다. 그러자 기사님이 화도 내지 않고 조용히 한마디 했다. “그럼, 그 전에 안낸 차비도 다 내셔야해요.” 하자 두 말 않고 차비를 넣고 내렸다. 그런 사람에게도 큰소리 한 번 안내고 조용히 마무리하는 그 마음이 존경스러울 정도였다.

나는 일주일에 4일을 태인초등학교 도서실에서 근무하게 되어 버스를 자주 탄다. 관통도로 정류장에서 어떤 할머니와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칠보 방면 버스가 손 드는 사람도 없는데 멈췄다. 앞 승강장 문이 열리더니 “할머니, 저 번에 버스에 놓고 내린 물건 찾으셨어요?”하고 물었다. 할머니는 기사님의 갑작스러운 말에 어리둥절하고 얼른 대답을 못했다. 그러자 “저 번에 버스에 약봉지 놓고 내리셨다고 했잖아요. 그 약 찾으셨나요?” 하자 그제야 할머니의 얼굴이 밝아지며 “네, 택시 타고 쫓아가서 찾았어요. 고마워요.” 했다. 버스기사가 웃으며 출발하자 할머니가 나에게 자초지종 설명을 했다. 한 달 분 약봉지를 깜빡 잊고 내려 낭패한 모습을 본 기사님이 그 할머니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가 우연히 정류장에 서있는 할머니를 발견하고 물어본 것이다. 기사님은 늙으신 자기 부모님이 생각나서 그랬을 것이다. 할머니는 혼잣말로 “아이고, 기사님 기억력도 좋아. 고맙구먼.” 하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지켜본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봄이라지만 아직도 바람이 쌀쌀해서 몸이 움츠러드는 스산한 날씨다. 그날도 관통도로 정류장에 서 있는데 버스에서 할머니 한 분이 앞문에서 내렸다. 할머니가 안전하게 내렸는데도 버스 문을 닫지 않고 기사님이 말했다. “할머니 여기서 5분만 기다리시면 태인 가는 버스 와요.” 그 말을 두 번이나 강조하고 버스가 떠났다. 할머니가 버스를 잘못 탄 걸 안 기사님이 태인 버스 타는 정류장에 내려주면서 할머니가 또 버스를 잘못 탈까봐 당부를 한 것이다.

시내를 순환하는 277번 젊은 기사님은 타고 내리는 사람들에게 친지를 만난 것처럼 항상 웃는 얼굴로 인사한다. “어서 오세요.” “안녕히 가세요.” 자주 타는 학생들에게는 “어서 와.” “잘 가.” 어떤 학생에게는 “오늘은 조금 늦었네.” 하고 건네는 명랑한 인사말에 버스 승객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진다. 그 기사님이 운전하는 버스를 타는 사람들은 승강장에 올라서며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남들이 가장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주말이나 설, 추석 명절에도 쉬지 못하고 차를 운전하는 일은 괴롭고 피곤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하루에도 수 백 명의 생명을 책임지는 고된 직업이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친절을 베푸는 기사님들이야말로 투철한 직업의식을 가진 이 시대의 작은 영웅들이 아닐까?

(2019.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