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례 운조루(雲鳥樓) 공식 홈페이지 ▒

ㆍ작성자	곽창선
ㆍ작성일	2018-11-25 (일)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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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 다른 사랑 이야기
저마다 다른 사랑 이야기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곽창선

늙은 것도 서러운데 아프고 병들면 무슨 소용이랴. 늙을수록 건강이 제일이다. 요즘 매스콤에 나오는 건강프로그램이나 책자를 통해서 몸에 맞는 건강식이나 보약도 찾아보고, 힐링 방법을 익히다 보면 하루해가 짧다. 어느 날, 원기에 좋다는 홍삼과 마늘을 섞어 만든 환을 주며 ‘드시고 약값 좀 하라!’는 농담에 ‘마른 나무 물짜기’ 라며 응수했다. 시간이 나면 둘이서 목운동(도리도리), 엄지발치기, 걷기, 탁구, 온열치료 등 몸을 수시로 움직여 준다. 이제 늙으니 전신이 저리고 쑤시고 아프다. 종종 안락의자의 도움도 받지만 악력을 이용해 풀어주는 게 제일 시원하다. 때때로 안마도 해주고 다리 맛사지도 한다. 다리 부분 맛사지는 침대에 거꾸로 누워서 상대의 발이나 다리를 주무르며 스킨십을 한다. 아내도 좋고 나도 좋으니 꿩 먹고 알 먹는 일석이조다. 젊어서는 마주보고 자야 했지만 지금은 개의치 않는다. 옆에만 있으면 든든하여 더없이 좋다.

어느 날 식사를 마치고 환담 중에 먼저 일어서려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일부러 아내의 심부름 핑계를 대며 이제 ‘여자들이 심부름을 다 시킨다며 투덜거리니’ 그때가 좋은 줄 알라고 K교수님이 거들었다. 옆에 있던 J여사는 당연한 일 아니냐며 핀잔을 준다. B여사는 재미있다는 듯 빙긋이 웃는다. 남편을 일찍 여의고 홀로 살아가는 J 여사는 항상 남편과 영혼의 대화를 나누며 살아가는 듯 행복해 보인다. 그런 J여사 눈에는 내가 이방인 같은가 보다. 보기 드문 열녀다. 그래서 종교보다 더 깊은 망부곡을 부르니 다른 신앙이 필요 없겠다고 위로했다.

어느 날 모임에 다녀오며 ‘저녁이나 합시다.’고 K를 이끄니 손 사례를 쳤다. 오늘 저녁은 아내와 집에서 식사하기로 한 날이라며 미안해한다. 평소 성격이 남달라서 결혼 후 지금껏 특별한 날이 아니고는 외식을 하지 않았다니 알만하다. 음식 만들기를 좋아해서 집에 온 손님이나 자녀들에게도 직접 음식을 장만해서 대접하기를 좋아한단다. 음식점 음식은 입에 맞지 않고 청결감이 떨어져서 싫다니 존중해 줄 수밖에 없다며 웃는다. 어쩌다 피치 못할 외식자리에 가도 물만 마신다니 신경 쓰일 일이다. 그래서 퇴직 후 아내의 외고집에 따르기로 하니 집안이 조용해 졌다며 웃는다. 벌써 국내산 삼베를 구해서 수의 일체를 준비해서 장롱 속에 보관하고 있다니 요즘 보기 드문 남편 바라기다.

친구 L은 얘기를 나누다 보면 시간을 끌며 식사 시간에 맞추려 할 때가 많다. 어느 날 하소연 비슷하게 아침도 못 먹고 나왔다고 한다. 왜 쌀이 떨어 졌나 돈이 없냐고 핀잔을 주면 겸연쩍게 웃는다. 요즈음은 아침에 음식 파는 집이 드물어 고구마나 달걀에 우유 한 잔을 마신다며 K를 부러워한다. 곡절을 알고 보니 아내가 젊어서부터 지금껏 뒷바라지 했으면 됐지 더 이상은 어렵다며 각자 자기일은 자기가 알아서 해결하자고 제안해서 따르기로 하니 오히려 편하단다. 그래서 한때 졸혼도 생각했으나 자식들 채면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니 답답하단다. 다른 사람들은 여자한태 황혼이혼을 당하는데 무슨 배부른 흥정이냐며 그렁저렁 살라며 핀잔을 주고 나니 남에의일 같지가 않았다.

옛날 고향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60년 가까이 지난 촌부의 실화다. 당시 그는 한량으로 소문난 멋쟁이였다. 산림관리소에 촉탁으로 다녔는데 그 위력이 대단해 이웃들이 벗하기를 어려워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이곳에서 땔감이 부족하거나 집안에 사용할 나무를 구하려면 그분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니 당연한 일이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어여쁜 색시를 집으로 데리고 왔다. 그의 부인은 식사 때마다 밥상을 잘 차려 첩에게 올리고 세숫물도 떠 바치니 3일 만에 줄행랑을 치더란다. 그래서 첩꼴을 보지 않았다며 자랑이 자자했다. 이런 소식을 들으신 어머니는 그 여자 머리가 좋다고 칭찬하시는 것이었다. 당시엔 흉이 될 일도 아니지만 지금 생각하면 뉴스 거리다. 얼마 전 90을 넘기고 작고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부부는 상호 존경과 신뢰로 살아가는데 그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어느 게 옳고 그르다 할 수 없다.’ 밀면 당기고 당기면 밀며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각기 다른 삶을 살아가기에 모두 장단점이 보인다. 내 삶도 돌아보면 우여곡절이 너무 많아서 표현하기 어렵지만 그때그때를 넘기며 지금에 이르렀다. 여느 가정처럼 가부장적인 생활로 여권을 지배하니 아내에겐 큰 고충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참고 나를 따라 준 아내가 고맙다. 퇴직 후 빈둥거릴 수 없어 자주 집안일을 도우며 아내의 퇴근만 기다리는 아내 바라기가 되였다. 아내가 퇴직을 하면 오순도순 지낼 줄 알았는데 웬걸 그전보다 파열음이 더 심하다. 인생 60은 직업의 평준화라더니 매일 붙어 지내니 보이지 않던 개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긴 시간을 함께하니 쉬울 것 같던 의사결정 과정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사고적인 판단기준이 다르니 의견 조율이 쉽지 않다. 생각보다 사소한 문제들이 쌓이니 갈등의 골은 깊어간다. 참 재미있을 것 같던 노후 생활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의 냉전을 지켜보던 선배 한 분이 누구나 겪는 과정이라며 참으란다. 스스로 안에서 문제점을 찾아보라며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문제점을 찾아보았다. 상대를 존중하는 배려심 부족으로 제고집을 피우는 것이 문제였다.‘ 네 탓보다 내 탓’ 을 깨닫는 순간 느낌이 왔다. 알았다. 수월하게 해결될 것 같아도 쉽지 않았다. 이것도 서로 숙성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생활방식도 바꾸고 여가 선용을 위해서 취미클럽이나 복지시설을 찾아 이웃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눈여겨보고, 평정심을 기르며 고정관념을 바꾸어 나갔다. 점점 상대를 보는 눈이 달라지고 어떻게 해야 아내의 마음을 얻을까 고민하다 보니, 아내가 보였다. 나보다 먼저 아내를 배려하자, 멀게만 느껴지던 거리가 좁혀졌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니 밝은 빛이 보였다. 이 빛은 아집과 독선을 버리라는 빛이었다. 얼마 남지 않은 삶은 오직 부부뿐이니 나를 낮추고 상대를 높이면 되는데 무슨 자존심을 세웠나 싶어 부끄러웠다. 지난 세월 다투며 살아 온 것도 지겨운데 징징거리며 살지 말자고 나를 채근하니 마음이 편해진다. 차츰 쌓인 골이 얕아지며 서로의 소중함을 알게 되였다.

얼마 전 대전의 어느 목사님 소개로 구당 선생의 침술을 전수받아 부부가 주 3회 교대로 뜸도 뜨며 알콩 달콩 사는 재미가 즐겁다. 부부는 동행하며 존중해주는 것이 제일 큰 덕목이요 마음의 힐링이다. 행복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좋은 감정으로 상대의 가슴을 뜨겁게 적셔주는 것이리라. 악처도 처다. 화음和音이란, 개성이 다른 두 음이 합쳐 고운 음을 내는 것을 뜻한다. 인생 70은 건강에 평준화란다. 70이 넘으면 누구나 약탕기 신세를 면치 못하는 병약한 신세란 뜻이다. 그런데 평생지기와 다투며 살아가야 한다면 황혼 길은 저주의 길이 될 것이다. 어떻게 살아가는 게 바른 길인가 생각해 볼 일이다. 그 길은 바로 부부 사랑이요 믿음이려니 싶다.

(2018. 11.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