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례 운조루(雲鳥樓) 공식 홈페이지 ▒

ㆍ작성자	곽창선
ㆍ작성일	2018-11-22 (목) 16:25
ㆍ홈페이지	http://crane43.kll.co.kr

ㆍ추천: 0 ㆍ조회: 429

수필공부를 하다 보니
수필공부를 하다 보니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곽창선

시작이 반이라는데 첫 시간부터 헤매고 말았다. 수업준비로 글 한 편을 교수님께 검토를 받아 수업자료에 올리지 못하고 주위에 소개할 모범사례도 준비하지 못한 것이다. 사전에 확인하지 못한 내 불찰이다. 그 동안 사용치 않던 메일계정도 새로 만들고 배운 내용도 참고하며 글을 쓸 준비에 쫓기다 보니 일 주일이 지났다. 초입이라서 일주 내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니, TV삼매경에 빠지거나 침대와 벗하는 시간이 줄어 아내의 잔소리가 뜸해졌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벌써 입문한 지 2개 월이 지났다. 그 동안 교수님의 지도로 몇 편의 글을 써 보았지만 쉽지 않았다.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이 지루했다. 퇴직 후 틀에 짜여진 계획이나 소일거리가 일정치 않아서 TV나 침대와 벗하며 지내는 시간이 늘어간다. 테니스나 필드에 나가 즐기기도 했지만 팔에 무리가 와 그것마저도 멀어져졌다. 모임이나 친구들과의 만남을 예전처럼 기다려지거나 별반 흥미를 느끼지 못하니 그들과도 소원해졌다. 나이가 들며 생명의 끈을 서서히 놓아가는 기분이다. 빈둥거리는 모습이 지겨운지 운동이나 좀 하라는 아내의 잔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그것도 젊을 때 얘기지 신명이 나질 않아서 피하려는 경향이 많다. 그러니 쉽고 편안함에 취해 나태해진다. 안되겠다는 생각에 무언가 새로운 흥미를 찾던 중 책상을 정리하다가 손때 묻은 일기장을 발견했다, 10여 년 전에 지나온 삶의 소회를 써 보겠다고 다짐한 내용이 나왔다. 여러 번 결심하고 시행치 못한 게 부끄러웠다. 새롭게 마음을 다지며 시작하려니 너무 늦은 감이 들어 망설여졌다. 써 보려고 책상에 앉으니 뱅뱅 제자리만 멤돌 뿐이다.

금요일이 다가온다. 수업에 필요한 과제로 창작수필 1편을 수업 자료에 올리고 나서 검토해 보면 글 구성은 고사하고 철자법이나 언어 선택도 부자연스럽다. 되돌리고 싶지만 이미 늦었다. 좀 차분히 검토해서 올리면 될 일인데 서두르다 저지른 실수다. 생활의 이모저모를 글로 표현하려니 부단한 노력이 필요했다. 종종 문우들의 작품의 구성, 묘사, 기법 등을 떠올려 보며 생각에 젖기도 한다. 그리고 미담 사례를 소개하려니 쉽지 않았다. 쉽게 생각하면 쉬울 것 같은데 막상 소개하려면 많은 생각이 든다. 훈훈한 이야기를 소개하다 보면 넓고 깊은 마음들이 내게 큰 울림으로 돌아온다. 참 좋은 시간이다. 창작발표 시간이 되면 미리 준비된 수업 자료에 따라 자기의 글을 낭송하고 난 뒤 질의응답시간이 이어진다. 자못 긴장이 흐른다. 나에겐 더 긴장으로 다가온다. 긴장하다 보니 써놓은 내 글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음량이 춤을 춘다. 버벅거리고 나면 문우들 보기가 민망하다. 문우들은 낭송대회 출연자들처 럼 바리톤에 알토에 옥구슬을 굴리는 듯 좋은 목소리로 읽어 내리면 글 속에 내가 빠져 드는 느낌이다. 이어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며 필력과 창의력을 키운다. 종종 문맥이나 구성에 불필요한 부분, 부적절한 표현을 바로 잡아주고 좋은 점을 격려하기도 한다. J 문우의 글을 두 번 접해보니 모두 심금을 울려주는 좋은 글이다. 어머니에 대한 효성과 망부와 나눈 약속을 지키려는 뜻 깊은 함의가 담긴 글이었다. 다만 앞으로는 밝고 진취적인 글을 선 보였으면 좋겠다는 L문우의 건의는 참고할 만한 고견이었다. 이렇듯 진지한 수업을 마치면 기다리는 시골집 밥상 앞으로 간다.

시골집은 허름한 한식집으로 태평동 모 정형와과 앞에 자리하고 있다. 평소 지나다 보면 문전성시를 이뤄서 의아하게 여긴 적도 있었다. 집 앞에는 모과며 홍시 고구마 등을 벌여놓고 안에서는 나이든 내외가 손님을 맞이하는 전형적인 시골집 분위기다. 방을 미리 예약한듯 안방에 들어가니 먹음직하게 보이는 상이 차려져 있다. 푸짐한 반찬에 기름진 밥이 식욕을 돋운다. 근래 먹은 음식 중 내 입맛에 잘 맞았다. 유독 부부애가 깊은 문우에게 좀 떨어져 앉으라는 농담도 곁들이고, 세상사를 나누며 식사를 하다 보면 밥맛이 절로 난다. 식사는 역시 혼밥보다 지인들과 어울려 먹는 것이 좋다. 마치 옛날 시골집에서 어른들 앞에 둘러앉아 식사하던 분위기다.

강의실 문을 열면 몇몇 문우들이 환담을 나눈다. K문우는 수필, 시, 사진에 깊은 관심이 있어 경험담을 얘기할 때면 침이 튄다. 입담도 좋고 보고 들은 게 많아서 들으면 들을수록 흥미롭다. 때때로 선조에 대한 얘기를 곁들이다 보면 타 지역에서 오는 문우들이 밀려온다. 준비해 온 먹거리로 입가심하며 정을 쌓아간다. 문우 중 80고령에도 불구하고 정읍에서 1시간 남짓 달려오시는 분들을 보면 나도 늦지 않았음을 깨닫게 된다.

시작이 반이다. 그래서 수련을 통해 단련해보려고 B, J 문우께 자문도 받아볼 생각이다. 모든 결과는 노력 여하에 따라 달라진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교훈을 되새기며 달려보자. 아직 피천득 교수가 쓴 수필의 오묘한 청자연적이니 난이요 학이란 말은 이해를 못하나 문우들 속에 어울리다 보면 이해할 날도 오리라 믿는다. 수필창작반 강의가 있는 금요일이 기다려진다.

(2018. 11.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