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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ay
'행촌' 에세이모음
작성자 윤석조
작성일 2009-10-02 (금) 08:28
ㆍ추천: 0  ㆍ조회: 3943      
추억속의 소금강
추억속의 소금강
                     -노인들의 여행3-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금요반 윤석조

                                                           

  전주로 가는 길에 오대산 소금강을 찾아보기로 하였다. 항구는 일찍 먼동이 트는지 이른 시간에 창문이 환하게 밝아왔다. 어젯밤에 다녀온 수산시장 근처로 L교장과 산책을 나섰다. 부둣가의 배에서 살아있는 물고기들을 그릇에 담아 내놓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속초의 아침이 열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어젯밤에 올라갔던 연금정을 다시 보고 서둘러 숙소에 돌아와 즐거운 아침식사를 하였다. 풍어제로 유명한 주문진항을 끼고 가는데, 같이 공부했던 젊은 날의 Y얼굴이 어른거렸다.
 오대산 국립공원 가는 길로 들어서니 추억이 새삼스러웠다. 20여 년 전 진안군 정천중학교 2학년 수학여행단을 인솔하고 설악산을 다녀왔었다. 그때 평창군 진부면에 있는 월정사에 들렀다. 대적광전(대웅전) 앞뜰에 고려 전기 석탑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세워진 팔각9층석탑(국보 제48호)이 우뚝 서 있었다. 연꽃무늬로 치장한 이층 기단(基壇)과 균등하고 우아한 조형미를 갖춘 탑신, 완벽한 형태의 금동장식으로 장엄한 상륜부 등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뛰어난 석탑이었다. 탑의 한 조각 한 조각에 장인(匠人)들의 얼과 손길이 천년의 세월로 빛나고 있는 것 같았다. 일주문에서 절 입구까지 처음 보는 울창한 전나무 숲과, 절 앞으로 흐르는 물이 아주 맑아 내 마음을 빼앗아 가고 있었다. 진안 정천의 청정(淸淨)지역에 살던 학생들조차, “야! 물 맑다.” 감탄할 정도였으니, 이보다 더 맑은 물이 또 어디에 있을까? 그냥 절에서 더 머무르고 싶었다.
 여름방학 때였다. 어느 산악회가 오대산 노인봉을 등반한다기에 아내와 함께 따라 나섰다. 산중턱쯤 올라가고 있었는데, 장대비가 퍼부어 할 수 없이 모두 돌아서 내려와야 했다. 온 몸은 젖었고 쉴 수도 없어 지친 몸으로 내려 왔다. 계곡으로 흐르는 물이 길을 막고 무릎까지 차올라, 아내의 손을 꽉 잡고 어렵게 건넜던 기억뿐 이었다.
 진고개를 달리다 소금강 가는 길로 접어드니 경사도 급하고 굴곡이 심하여 차가 심하게 흔들렸다. 긴장하면서도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배운 고시조(古時調)의 한 구절인 구절양장(九折羊腸)이란 이런 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먼저 읊었는지 친구들과 더불어 소리 내어 읊었다.

         풍파에 놀란 사공 배 팔아 말을 사니
         구절양장이 물 도곤 어려워라
         이 후란 배도 말고 말도 말고 밭 가리나 하리라

선조 때 문과에 합격하여 병조판서(무과)까지 올랐지만 귀양살이까지 한, 정치인 장만의 삶을 이해하는 좋은 시간이 되기도 하였다.
 노인봉 산자락에 흐르는 청학동 소금강에 도착하였다. 오대산국립공원에서 첫손 꼽히는 천하절경으로 이름난 곳이다. 국립공원을 지정했던 5년 전인 1970년에 이미 명승지 1호로 지정되었다고 하였다. 관리사무소를 지나 좁다란 길로 산행을 시작하였다. 산행 들머리에 ‘小金剛’, ‘명승제1호 소금강 청학동’이란 표지석이 서 있었다. 골짜기를 따라 가다보니 열 십(十)자 형의 십자소와 연꽃 모양이라 하여 이름 지어진 연화담(蓮花潭)이 있었다. 소금강 유일의 사찰로서 비구니사찰인 금강사를 돌아보고, 아쉬운 발길을 돌려야 했다.
 청학천이 13km를 흘러내리며 이룬 소금강은, 기암괴석과 층암절벽 ․ 소와 담 ․ 폭포 등 30여 개가 넘는 경관지(景觀地)를 만들고 있다 하였다. 특히 금강산과 흡사한 만물상, 구룡연, 상팔담 등이 볼만하다고 하였다. ‘소금강’이란 이름은 율곡(이이)이 청학동을 탐방하고 쓴 ‘청학산’에서 유래되었으며, 무릉계곡 바위에 아직 ‘소금강’이란 글씨가 남아있고 하였다.
 왔던 길을 되돌아 나갔다. 강원도에 왔으니 한 끼는 강원도 음식의 대명사가 된 메밀국수로 하자고 하였다. 진고개를 넘어가면서 길가 음식점 간판에  ‘메밀국수’가 쓰여 있는 집은 모두 들러 보았으나 허사였다. 영동지방에 없으면 영서지방에는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가는데, 눈에 익은 송천 약수터가 나타났다.
 칠팔년 전 이곳에서 약수를 마셔보고 병에 담아갔던 때가 생각났다. 그때도  K교장이 운전하며 H교장과 J대 G교수와 함께 설악산을 다녀왔었다. 백담사 입구 주차장에 차를 놓고 백담사를 거쳐 봉정암에서 저녁을 먹고 대청봉 대피소에서 밤을 보냈다. 다음날 일찍 회운각에서 공룡능선을 타고 백담사로 내려왔었다. 하루 14시간 정도를 걸었다. 백담사에서 막 버스를 타려고 절름거리는 발걸음으로 몸부림쳤던 일은 잊을 수가 없다. 그때도 K교장의 봉사가 아니었으면, 대청봉에서 백담사로 내려오는 10월의 설악산 단풍을 구경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단풍 이야기가 있을 때마다 백담사 입구로 흐르는 맑은 물과, 냇가 옻나무 단풍잎이 빨갛게 어른거려 젊은 날의 추억을 살려 주고 있다.
 쉬어가기 겸 길가의 상점에 들러 메밀국수를 먹을 수 있는지를 물었다. 환영하면서 방안에 들어가 기다리라 하였다. 허리를 구부리고 컴컴한 안방에 들어가 울툭불툭한 벽을 뒤로 둘러앉았다. 영락없는 옛날 시골 농민들의 방 같았다. 한문글씨를 연습한 종이를 벽지로 발라놓아, 해방직후 겨울방학을 이용하여 서당에서 천자문을 읽던 생각이 났다. 아줌마가 손으로 만들어준 메밀국수에 인정도 담겨, 푸짐하게 먹고 나니 부른 배를 내밀고 전주까지 갈 일만 남았다.
 이번 2박3일 노인들의 여행은 참으로 좋았다.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인제의 내린천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양구와 화천지역의 전적지를 돌며 민족의 아픈 현장을 보았다. 더구나 금강산의 축소판이란 소금강의 일부분을 처음으로 잘 볼 수 있었다. 이번 여행에 동행한 친구들과, 여행을 도와준 모든 분들에게 고맙고 감사할 뿐이다.
                             (2009.  5.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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