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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ay
'행촌' 에세이모음
작성자 김순길
작성일 2020-07-08 (수) 05:21
홈페이지 http://crane43.kll.co.kr
ㆍ추천: 0  ㆍ조회: 32      
세상을 바꾼 숭고한 영웅
‘세상을 바꾼’ 숭고한 영웅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김순길









산 좋고 물이 맑아 자연과 더불어 살기 좋은 곳, 정읍(井邑)이 내 고향이다. 항상 고향을 그리워하면서도 지금껏 귀향하지 못하고 인근 전주에서 40여 년을 살고 있다. 나는 고향 자랑을 많이 하는 편이다. 푼수 빠진 고향 자랑 중심에는 ‘동학농민혁명’과 ‘녹두장군 전봉준’ 이야기가 만개한다.



나는 어릴 적 또래 중 키가 제일 작아서 ‘녹두(綠豆)’라 불리며 튼튼하지 못한 몸으로 힘든 시절을 보냈다. 더욱이 모든 것을 앗아간 6.25 전쟁으로 끼니조차 연명하기 힘든 시기였으니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가난에 찌든 그 시절을 원망하면서도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언젠가는 올 것이라고 스스로를 달래며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냈다. 키 작은 ‘녹두’도 건강한 청년으로 성장하고, 이때부터 힘없고 헐벗은 민중을 위하여 개혁의 선봉에선 ‘녹두장군 전봉준’의 숭고한 정신을 가슴 깊이 간직하게 되었다.



세월이 흐른 지금 되돌아보면 선천적으로 약한 내가 평탄치 못한 인생길을 헤쳐나가도록 만들어준 동력은 언제나 내 마음속에 녹두장군의 숭고한 정신이 살아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생과 사의 전쟁터인 월남전 참전, 배경이 우선시되던 공직자의 길 등 힘들고 어려운 기로에 서 있을 때마다 녹두장군의 높은 기개를 새기며 당당하게 헤쳐 나갔다.



전봉준 장군(1855~1895)은 정읍시 이평면 장내리 조소마을 고택(사적 제293호)에서 동학운동에 뛰어들기 전까지 마을 아이들에게 한학을 가르치며 조용하게 살아가던 훈장이었다. 장군의 키는 150cm의 단신이지만 다부진 체격으로 신중하고 조직적이면서 기질이 아주 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동학농민혁명은 1894년 1월 제폭구민과 보국안민을 기치로 내걸고 정읍 고부에서 봉기했다. 농민들이 지핀 혁명의 불길은 1년여에 걸쳐 충청도, 경상도, 강원도, 경기도, 황해도 등 전국각지로 번졌다. 동학농민혁명군은 황토현(정읍)에서 관군에게 대승을 거두고 여세를 몰아 전주성을 점령한 뒤 전주화약(和約)을 체결, 각 고을에 집강소를 설치하며 개혁을 조직적으로 진행에 나갔다. 그러나 청일전쟁에 승리한 일본이 무능한 조정의 내정에 치밀하게 간섭하고 침략야욕을 앞세워 농민군 토벌에 앞장섰다. 미완의 혁명으로 끝난 동학농민혁명의 슬프디슬픈 역사는 공주의 우금치 전투가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 겨우 죽창과 화승총을 들고 결사 항전했던 농민군은 기관총과 야포 등으로 중무장한 일본군에게 대학살을 당하며 속절없이 무너져 버렸다. 사실 자료에 따르면 갑오년에 참여한 농민군은 100만 명이며, 희생자는 30만 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이들 중 대부분은 이름을 찾지 못하는 무명 농민들이다.


역사적으로 민중이 주도하는 ‘아래로부터의 저항’과 개혁 정신의 뿌리를 찾다 보면 역사발전의 주체로서 민중이 최초로 등장하는 동학 정신과 만나게 된다. 안으로는 낡은 봉건제도를 개혁해서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고, 밖으로는 일제 침략에 맞서 국권의 수호를 외친 동학정신이야말로 애국애족의 표상이며 근대 민주주의의 뿌리라 할 수 있다.

3.1독립운동과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6.10항쟁, 촛불혁명에 이르기까지 동학정신에 바탕을 두고 계승 발전되어 왔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살아있는 역사이다. 그럼에도 동학농민혁명의 가치는 긴 세월 암흑 속에 묻혀 있다가 1980년대에 이르러서야 재평가되기 시작했고, 그동안 동학난, 동학농민운동 등으로 왜곡, 축소되어왔다. 역사는 2004년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비로소 「동학농민혁명」이라는 올바른 이름을 찾았다. 그리고 전봉준 장군은 순국 123년만인 2018년 4월 24일 교수형을 당한 종로네거리 전옥서(典獄署)터에 동상으로 부활했다.



  '정도를 위해 죽는 것은 조금도 원통할 것 없다.' 는 최후의 진술, 부상으로 들것에 실려 끌려가면서도 흔들리지 않았던 당당한 눈빛, 죽음 앞에서도 민중의 삶을 걱정하며 꺽일 줄 몰랐던 기개. 전봉준 장군이 부활한 모습은 단순한 조각이 아니고 나라의 명예이며, 긍지임을 느끼게 해 주는 숭고한 영웅의 상징이다. 2019년 숱한 논쟁 속에서도 국가기념일(5월11일)도 황토현 전승일로 제정되었다.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적 의의를 기리고 대중화 할 수 있게 되었다는 큰 의미일 것이다. 하늘에 계신 녹두장군과 이름 없는 농민군도 이제는 편히 영면하실 것이다.



흰 쌀밥 같은 이팝나무꽃이 흐드러지게 핀 오월! 모든 사람이 평등하며 귀한 존재라는 가르침은 이팝나무 꽃잎처럼 온 세상 천지에 분분히 날려 다시금 일깨워준다. 지금 이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동학농민혁명이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사람이 하늘이다.’ 는 인내천(人乃天)사상이 이제는 국민이 진정한 주인이 되는 올바른 ‘민주주의’로 활짝 피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이루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황토현의 함성이 온 누리에 울려 퍼지는 오월!  동학농민혁명의 발상지인 내 고향을 그리며 ‘세상을 바꾼 숭고한 영웅’ 녹두장군을 다시금 생각한다.

                                                                (2020. 7.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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