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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ay
'행촌' 에세이모음
작성자 정근식
작성일 2020-12-03 (목) 05:52
홈페이지 http://crane43.kll.co.kr
ㆍ추천: 0  ㆍ조회: 110      
크산티페의 변명




크산티페의 변명
정근식 국민연금공단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람도 있지만 악명높은 사람도 많다. 혹시 악명높은 사람 중에 자신의 본 모습과는 달리 알려져 억울해하는 사람은 없을까? 그중 한 사람이 소크라테스의 부인인 크산티페일 것이다. 크산티페는 고대 그리이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배우자이다. 소크라테스는 철학자로 유명하지만, 그의 배우자 크산티페는 악처의 대명사이다. 소크라테스는 고대 그리이스 사람이니 크산티페의 악처 명성은 2400년 이상 지속된 셈이다. 만약 저승이 있어 자신이 후대에서 악처로 유명하다는 소식을 듣는다면 땅을 치며 분개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에서 사형집행 직전에 아이를 안은 채 울부짖는 대목이 있다. 분명 남편을 사랑하는 평범한 여인의 모습이다. 사형을 앞둔 부인의 애달픈 심정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먹먹하다. 그런 그녀가 남편을 미워하는 악처였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럼 왜 그녀는 오랫동안 역사속에 3대 악처로 남아있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진다.
이런 가정을 해 보자. 어떤 여인이 30살 많은 남편과 살고 있는데, 아이가 둘이나 있다. 남편은 직장을 팽개치고 젊은 사람들과 매일 술만 마시고 있다. 그러다가 가끔 젊은 사람들을 집으로 데려와 술상을 봐 달라고 한다.
그날도 남편은 술에 잔뜩 취해 들어와서 문전박대했다. 젊은이들을 데려와 술상을 봐 달라고 하는데 많이 서운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먹을 것이 없어서 굶고 있는데 술상을 봐오라는 것보다 가장의 노릇을 하지 못한 남편이 섭섭했다. 여인은 욕을 한 바가지 퍼붓고 분이 덜 풀려 남편의 대머리 위에 구정물 한 바가지를 뒤집어 씌웠다. 동행한 젊은이들이 보다 못해 왜 저런 분 하고 사느냐고 하자 남편은 태연히 말한다. 천둥이 치면 큰 비가 쏟아지게 마련이고. 사나운 말을 다스릴 줄 알면 다른 말들을 다루기가 쉬워진다고.
여인은 막막했을 것이다. 아이들은 굶고 있는데 매일 술을 마시고 비틀거리는 남편이 어찌 이쁘게 볼 수 있으랴. 무능하고 백수인 남편에게 미움이 아니라 심한 증오까지 생겼을 것이다. 구정물을 남편에게 던지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당장 이혼을 요구하고 싶을 것이다. 죄가 있다면 못난 남편과 함께 산 것뿐이다. 불행히도 이 못난 남편의 이름이 바로 고대 그리이스 시대의 유명한 철학자 소크라테스이다.
억울한 것은 크산티페만이 아니다. 3대 악처 중의 하나인 톨스토이의 아내 소피아 역시 마찬가지다. 18살이나 나이 많은 남편 톨스토이가 여든 두살에 가출하여 객사하였다는 이유로 대문호 톨스토이를 죽게 만들었다는 낙인을 찍어 역사가들은 악처로 만들었다. 소피아는 귀족출신으로 톨스토이 아이를 13명이나 낳았다. 당시 귀족은 유모를 두어 아이를 길렀는데 톨스토이가 유모를 두는 것을 거부하여 소피아 혼자 키웠고, 톨스토이 글을 봐주는 일을 맡아 하루 5시간 이상 잠을 잔 적이 없다고 한다. 게다가 톨스토이는 젊은시절 이상한 여성 편력이 있어 심한 바람둥이였다. 그런 배우자가 여든이 넘어 모든 재산을 청산하고 농민으로 살겠다고 하니 누가 찬성하겠는가. 소피아의 입장에서도 크산티페만큼이나 많이 억울할 것이다.
의문이 생긴다. 객관적으로 보면 크산티페는 세계의 악처라고 할 정도는 아닌데, 왜 세계의 가장 유명한 악처로 만들었을까. 다른 눈으로 보자. 시대 상황에서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을 것이다. 소크라테스를 사형시킨 죄목은 신을 인정하지 않는 죄와 새로운 사상으로 청소년을 선동한 죄이다. 소크라테스는 사형이 당하고도 명성이 높았다고 한다. 그 명성을 상쇄시킬 무엇인가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배우자 크산티페를 끌어들여 악처로 만듦으로 소크라테스의 명성을 낮추려 하지 않았을까.
문학에서 낯설기하기란 말이 있다.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라는 의미이다. 새싹이 ‘돋는다.’가 아니라 나무가 새싹을 ‘밀어낸다.’라는 표현이나, 꽃을 사람으로 본다면 생식기에 해당된다는 것이 낯설기하기이다.
낯설어하기란 문학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자신의 일이나 가정에서 가끔 ‘왜’라는 의문부호를 가지고 바꾸어야 할 것이 없는지 찾아보자. 크산티페의 변명처럼 직장에서 가정에서 분명 새로운 눈으로 보면 무엇인가를 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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