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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ay
'행촌' 에세이모음
작성자 이진숙
작성일 2020-09-26 (토) 15:33
홈페이지 http://crane43.kll.co.kr
ㆍ추천: 0  ㆍ조회: 16      
첫 수필집 출간 이후
첫 수필집 출간 이후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이진숙







세상 모든 일들은 노력한 사람에게 만 먼저 다가가서 손을 잡아 주는 것이 확실하다. 요 몇 달 동안 수필집을 낸다는 핑계(?)로 작업실에는 몸만 그냥 왔다 갔다 한 흔적이 나타나서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매일 그려야 지 그려야지 하는 마음 만 가지고 하루도 빠짐없이 작업실에 올라오긴 했었다.  그러나 수필집을 내기 위한 5월, 6월, 7월 이렇게 석 달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그동안 써 놓았던 수필작품을 마음에 드는 것들을 몇 차례에 걸쳐 고르고 또 그 작품들을 주제에 얼추 맞는 것들로 나누면서 지내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손바닥에서 모래알이 술술 빠지듯 지나가 버린 것이다.  가 편집된 책을 가지고 또 교정을 본다며 매일 책에 매달리다 보니 스치듯 지나가 버린 시간들이었다.  특별한 재주가 없는 나는 한 가지 일에 매달리다 보면 다른 일들을 전혀 하지 못하는 단순하기 그지없는 사람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 것이었다.  남편과 둘이 머리를 맞대고 열심히 교정을 보고 또 보면서 출판사에 들러 마지막 교정본을 들고 왔다. 이 교정본을 처음 보는 것마냥 꼼꼼하게 읽고 또 읽고 다시 고치고…. 드디어 출판사에 완결판을 넘겼다.

종이에 활자가 찍혀 책으로 나오는 것은 정말 순간이었다.  이 책을 만들기 위해 자그마치 7~8년이 걸렸는데. 완성된 책을 받아 든 순간 부끄러움이 확 밀려왔다.  출판사 사장님과 내 작품을 책으로 만들어 준 ㅈ의 얼굴을 차마 똑바로 볼 수가 없었다.  내가 처음 개인전을 한다며 시작하는 행사를 할 때 가졌던 느낌과 똑 같았다.  수십 점의 작품을 몇 년에 걸쳐 그리고 머리가 깨지도록 골머리를 썩이며 고른 작품들이 갤러리(gallery)에 걸리고 많은 사람들이 축하한다고 하면 나는 바로 쥐구멍으로 숨어 버리곤 했었다. 사람들 앞에 서 있는 내 모습이 그 순간처럼 작고 초라해 보인 적이 없었다. 완성된 책이 내 손에 쥐어지는 순간에 나는 바로 그런 느낌을 받았다.

책을 받아 들고 집에 와서는 내가 보내야 되될 분들과, 보내고 싶은 사람들에게 정성을 다해 주소를 쓰고 보내는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러면서 또 두어 달이 훌쩍 지나갔다.  책을 받은 분들의 분에 넘치는 감상평에 우쭐하다가도 깜짝 놀라며 ‘이게 아니지!’하고 나를 붙들었다.

눈앞에서야 당연히 칭찬이겠지, 그 말 속에 들어 있는 진심을 알아야 되는데, 얄팍한 나는 그저 좋아라 하고 있으니 참 한심한 사람이다.  이런 순간 나를 철없는 한심한 사람이라며 꾸짖는 또 다른 나를 보게 되었다.

‘네가 지금 뭐하는 사람이냐? 이제 그만 꿈에서 깨어나라. 그리고 진짜 네가 해야 할 일들을 시작 해!’ 순간 정신이 번쩍하며 내 머리를 심하게 때렸다. 그래 이젠 그림을 그려야 돼! 더 이상 이대로 있으면 안 돼, 그제야 내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었지 하며 2층 작업실로 올라왔다.


오랫동안 내팽개쳐진 작업실은 먼지투성이에 군데군데 벌레 사채 등으로 그야말로 난리법석이었다. 부랴부랴 모두 치우고 커다란 창문도 활짝 열어젖히고 라디오를 켰다. 내가 늘 듣는 FM채널에 맞추니 조용한 음악이 흐르며 드디어 작업실이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오랫동안 펼쳐 놓았던 화판 위에 요철지를 붙이고 이젤에 올려놓고 의자에 앉았다.  스케치까지는 그런대로 마음에 들게 잘 그려졌다.

문제는 그 다음 단계,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이 그림을 어떻게 완성을 해야지? 접시에 짜 놓은 물감은 속절없이 굳어만 가고, 오른 손에 쥐고 있는 붓은 움직일 생각도 못한 채 하염없이 스케치한 그림만 보고 앉아 있었다.

눈도 막히고, 머리는 멍하고, 손도 굳고, 도무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근 다섯 달을 모른 체하고 있다가 지금에야 붓을 잡고 앉아서 어떻게 그림이 잘 그려지리라고 생각했을까? 겁도 없고 오만한 나의 생각에 그만 내가 싫어졌다.

의자에서 일어나 바닥에 수묵화를 그리기 위해 준비해 놓은 앉은뱅이 탁자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이미 펼쳐 놓은 장지에 내가 생각했던 소나무를 그리기 위해, 접시에 물과 먹물을 적당히 섞고 붓에 묻혀 그리기 시작했다.

역시나! 그리면 그릴수록 소나무도 잡목도 아무것도 아닌 것만 어지럽게 내 눈 앞에 나타났다. ‘내 이럴 줄 알았어~.  뭐 그리 대단한 실력가라고 단 번에 작품이 나올 줄 알았다니….

채색화도 수묵화도 아무 것도 그릴 수 없었다. 열심히 생각하고, 그려보고, 버리고 지칠 때까지 정말 아프도록 몇 번이고 되풀이 그려야 되겠다. 수필집 한 권 출판한 일을 가지고 자아도취에 빠져 이리도 오만해 졌는지 많이 뉘우쳐야겠다.  언젠가는 나를 향해 장지 위에 손짓하며 달려 올 소나무를 기다리며 열심히 그려야겠다.

또 이젤 위에 펼쳐 놓은 요철지 위에 내가 좋아하는 말라 비틀어진 해바라기가 나를 보며 ‘이렇게 다가 올 줄 알았다’ 며 나타나 주기를 기대하며 오래도록 연습을 해야겠다.

                                                                                  (2020.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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