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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ay
'행촌' 에세이모음
작성자 윤근택
작성일 2020-08-02 (일) 05:18
홈페이지 http://crane43.kll.co.kr
ㆍ추천: 0  ㆍ조회: 9      
황소를 몰고 온 남자
황소를 몰고 온 남자



                                                                                                                               윤근택(수필가/문장치료사/수필평론가)



사실 그는 무지막지(無知莫知)한 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재미성이별로 없는, ‘불뚝성질’을 지닌 사람이고도 할 수 있다. 그는 자기 위에 두 살 터울의 두 손위 누이를 둔 이다. 그리고는 자기로부터 내리 일곱 명의 동생을 둔 이다. 그는 한 가정의 장남(長男)으로 태어났다. 그 좁디 좁은 초가삼간에서, 양친을 포함해서 열 두 명이 마치 올챙이처럼 ‘오글오글’ 살던 환경에서 자라났다. 그래도 맏이라고, 중학교에라도 보내야겠다고 느꼈던 그의 양친. 그는 며칠간 학교에 나갔다.

그런데 어느 날 학교에 다녀온 그는 양친께 무릎을 꿇고, 자못 진지한 목소리로 고해 바쳤다. 애늙이의 모습 그대로였다.

“아부지요, 어무이요, 저는 ‘마아-’ 더 이상 학교 안 갈랍니더. 동생들 가운데 똑똑한 녀석이 있다면… .”

그는 양친을 도와 농사를 했다. 그는 나이가 들어, 군대를 가게 되었다. 통신병과였다. 월남전에 차출되었다. 그 곳 전쟁터에 가면 죽을 줄로만 알고, 파병열차 안에서 창을 깨고 탈영을 했다. 군법회의에 부쳐져, ‘즉형(卽刑)’에 처해질까, 숨 넘어가는 목소리로 양친에게 구원(救援)의 편지를 보냈다. 무지렁이인 그의 양친은 소 팔고 전답 팔아 돈을 만들어, 브로커를 앞세우고, 그를 구출하려고 들었다. ‘자수(自手)’라는 과정을 통한 것이라, 일정 량의 영창신세만 져도 될 것을, 브로커의 농간에 넘어가서… . 당시 세상물정을 몰랐던 점은, 그의 조무래기 동생들조차도 마찬가지였다.

그러했던 그. 그는 자기 모친이 심지어 도시락까지 싸 들고 다니면서, 어렵게 어렵게 찾은 규수와 군말 않고 혼인을 하였다. 자칫, ‘똥차에 밀려 세단이 못 나아갈까’ 동분서주 애쓴 그의 모친의 덕분이기도 하다. 그 많은 손아래 시누이와 시동생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댁 부모님의 권유에 군소리 않고 시집을 온 ‘긴 생머리의 아가씨’야말로 천사였다. 그랬던 그가 무슨 영문인지, 고향집을 떠나겠다고 하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은 골몰스런 새댁을 생각해서였을 것이다. 그는 자기의 사촌처남이 짱짱하게 나간다는 ‘안양’이라는 신도시로 갔다. 그의 양친과 그의 아우들은 몹시 못마땅하였다. 새 식구가 들어와서 그를 꼬드겼을 것이며, 힘든 시집살이에서 ‘탈출구’로 그곳을 택하였을 거라고.

아주 나중에 그의 아내를 통해 안 일이지만, 그곳에서 그의 생활은 썩 좋지가 않았다. 그곳에 새로운 도시가 들어서자, 모래야 자갈이야 건자재가 많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개울에 널려 있는 것이 모래이고, 그는 시골에서 익힌 대로, 소와 우차(牛車)를 이용하여 그 모래를 실어다가 내다 파는 일을 했다고 한다. 사실 그는 총각시절부터 성질 더럽게 뿔질하는 황소도 잘 다루던 사람이다. 소위, ‘뜬 소’조차도 그의 손에 닿으면, 금세 온순해지곤 하였다. 막상 배운 것도 없는 그는, 그곳에서 갯가 모래를 실어다 팔면서 지냈던 모양이다. 한 마디로, 돈이 아니 되는 그 짓을 했다. 오히려 시골에서 그의 양친은 그들 신혼부부한테 생활비를 매월 부쳐주곤 하였다. 대체, 그는 그 동안 무슨 짓을 하고 있었더란 말인가. 막걸리가 늘 ‘말술[斗술]이었고.,. 타락 아닌 타락으로 이리저리 치달았던 모양이다. 어쩌면, 그것이 자탄(自歎)과 자학(自虐)에서 비롯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나한테 그 많은 동생들이 없었더라면… . ‘이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기를 한 두 해. 어느 날 해는 저물었는데, 시꺼먼 물체가 골목을 지나 집 마당에 들어섰다. 그처럼 큰 황소를 본 적이 없다. 소는 기진맥진해 있었다. 우차(牛車)에서 내린 텁수룩한 사내.

“아부지, 저 맏이 경택이시더. 저 왔니더. 안양에서 삼륜차(三輪車 ; 당시 삼륜차가 반짝 있던 시절이다.)에다 소와 달구지를 싣고 왔는데요, 저 ‘노귀재’에서 차가 탈나서… .”

참으로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상식적으로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화물차가 탈이 났으면, 그 차주(車主)가 차선책을 강구하여 주었을 것이다. 그 노귀재라면, 영천과 청송의 경계지점에 있고, 거리가 도대체 얼마인가? 하루 종일 구루마를 황소에 달고 왔다는 말이렷다. 그의 손에는 손수 만든 삼지창(三枝槍)도 들려 있었다. 어둠이 내려, 강도 등을 만나면, 평소 그의 말처럼, 배창자를 단번에 찌를 만반의 준비도 갖추었다는 뜻이다. 당시 나는 어렸지만, 이런저런 정황을 미루어서라도, 그가 노자(路資)까지 떨어져서, 실제로는 보다 더 먼 곳에서부터 그 황소가 끄는 구루마를 타고 왔으리라 짐작된다. 가족 그 누구도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이날 이때까지 그 때의 진실을 캐물은 이도 없다. 그는 ‘돌아온 탕아(蕩兒)’ 자체만으로도 양친으로부터 그날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늘어져 누운 황소는 그 이튿날 원기를 회복하였다. 후일 녀석은 소 품평대회에서 특등상을 받아, 그의 아버지를 한껏 기쁘게 하였다.

그가 바로 나의 백씨(伯氏)다. 그는 참으로 대단한 분이다. 그날 이후 ‘초막골 경택이는 지고는 못 가지만 마시고는 간다.’는 그 ‘말술’의 신화(神話)도 그만 접었다. 그 골초가 무슨 작심으로 담배도 뚝 끊고 말았다. 참말로 무서운 집념이다. 두 살 터울이니, 나로부터 출발하여 잠시 역산(逆算)해 본다. 근택 57,영택59,말자 62,춘자 64,고인이 된 봉자 66, 정택 68, 본인인 경택 70. 그러니 어느새 그는 70 노인이다. 그는 그의 양친이 동생들 양육하고 치송(治送)하느라, ‘임하댁’이나 ‘송강댁’ 에 수시로 드나들면서 고리대금을 꿔 왔던 것을 뼈아프게 여겼던 모양이다. 고향에 가면, 자랑스럽게 말한다.

“동생들 보게나. 이젠 저 임하댁 토지 내가 죄다 샀어. 그리고 송강댁 토지도 다 샀는 걸.”

한마디로, 그는 맺혀 있었다는 말이다. 그러한데도, 여태 이 아우들은 모이기만 하면, 그를 ‘구두쇠’라고만 쑥덕댔다. 맏이의 살이가 넉넉해야 그 집안이 평화로워진다는 것도 최근에야 깨닫게 된다.

나의 백시(伯氏)는 연세 덕분이지는 모르지만, 전에 없이 자상해졌다.

“초롱이 애비 보게나. 사실 형 없는 이만치 불쌍한 사람도 없다네. 동생들은 형이 하자는 대로 그저 따라만 하면 되지만… .”

맏이의 애로점을, 나는 죽었다 깨어 나도 모를 것만 같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 어디 저 멀리에서만 찾을 수 있는 지혜일까? 내리 양보에 양보를 거듭하여 4년제 대학을, 그것도 국립대학을 나온 이는 열 남매 가운데 나뿐이다. 참으로 축복이다. 게다가, 수필작가로서 그 이름까지, 내 어머니의 말마따나 ‘조선팔도’에 떨치고 있으니… .

‘황소를 몰고 온 남자!

당신께도 무척 감사 드리나이다. 형보다 나은 아우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나이다. 주말 설 명절에는 꼭 찾아 뵐 것입니다. 그때 가서는 ‘소를 그렇게 몰고 올 수밖에 없었던 사정’도 이번에는 꼭 여쭤 볼 것입니다.’


* 이 글은 인터넷 (한국디지털도서관>윤근택> 작품/논문>미발표작 ; http://www.kll.co.kr)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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