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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ay
'행촌' 에세이모음
작성자 곽창선
작성일 2020-06-27 (토) 15:54
홈페이지 http://crane43.kll.co.kr
ㆍ추천: 0  ㆍ조회: 17      
그리운 추억의 초상들
그리운 추억의 초상들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곽창선







교동 근처 하숙집에서 7명이 숙식을 함께 했는데, 같은 또래로는 석이와 돌이가 있었다. 종종 공부에 싫증이 날 때마다 가까운 오목 대, 향교, 한벽루로 쏘다니며 쌓인 스트레스도 풀고 기행도 저지르곤 했었다. 그동안 잊고 지냈는데 그 또래들이 동부인해서 한옥 마을을 찾았다.



50년이 훌쩍 지난 그 옛날 교동의 모습은 한 폭의 산수화처럼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오목대, 은행나무와 향교, 푸른 숲속 절벽에 자리한 한벽루, 맑은 물이 흐르는 전주천이 어우러져 어느 것 하나 모자람이 없는 시민들의 휴식 공간이었다. 젖어든 사연들이 은밀히 떠오를 때면 묘한 흥분이 일기도 하는 곳이다.



지난 흔적을 찾아 기웃거리고 다녔다, 기쁨 대신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온통 난개발의 여파로 거리는 북새통이고 어설프게 들어선 건물들 속에 옛 모습은 성형에 실패한 여인네의 얼굴처럼 변해 버렸다. 철길 대신 새로 난 다리 옆으로 뻥 뚫린 동굴을 짊어지고 외로이 서있는 한벽루는 뒷방지기 신세다. 태공들의 쉼터 물웅덩이는 교각이 가로 놓여 풍류객들의 발길을 막았고,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소음에 매미마저 떠나버려 적막감마저 돌았다.



물고기탕 집에 자리를 잡았다. 피라미탕에 반주로 주고받은 한 잔 한 잔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지난 기행들을 아내들에게 고자질하기에 바빴다. 입담 좋은 석이가 고교시절 러브스토리를 스스럼없이 말할 때 모두 귀를 쫑긋 세웠다. 처음 술을 마시고 고생했던 이야기며, 서학동 앞 냇가에서 젊은 여인네들의 밤 목욕 때 랜턴을 비치던 해프닝이며, 인근 참외밭에 들어가 참외를 서리하다 줄 행낭을 치던 얘기까지, 갑론을박하며 까발려질 때마다, 아내들은 박장대소를 했다. 그래도 지금 생각하면 공포감과 스릴이 교차하던 순간들이 고소하게 만 느껴진다.



그 중 가장 씁쓸한 추억은 은밀하게 준비한 첫 성인 놀음이었다. 권연(아리랑)을 입에 물고 캑캑 거리며, 막걸리 주량을 늘려가다가 경험이 부족한 탓에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물에 뛰어들거나 모래밭에 벌렁 눕거나 덜덜 떨며 바위에 올라 배를 깔고 신음하던 일이다. 남 몰래 꿈꾸어 오던 기행의 종말은 비참하게 끝났다.



한벽루 물가에 똬리를 틀고 앉아서 멍청히 물속을 처다 본다. 저녁노을이 벌겋게 물들면 수면 위로 은빛 찬란한 피리들의 멋진 공중 부양을 본다. 왜 저토록 좋아 날뛸까? 귀목나무 언저리에 붙어 울어대는 매미는 왜 하루 종일 목 놓아 울고만 있을까? 답을 찾을 수 없었다.



햇빛이 기린봉 마루에 머물면 남원행 열차가 기적을 울리고, 목 놓아 울어 대던 말매미가 울음을 그치고, 튀어 오르던 피리도 수면 밑으로 잠긴다. 저녁 식사에 늦지 않도록 서둘러 하숙집으로 달렸다. 시간이 되면 모두 제자리로 돌아간다. 미물도 갈길 찾아 가건만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헤매는가?


 해답을 찾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상급반이 되면서 입시지옥 속에 빠져 방황은 끝나고 새로운 고행이 시작되였다. 한낱 해프닝 같지만 영원히 지울 수 없는 그리운 추억의 초상들이다.

                                                                          (2020. 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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