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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ay
'행촌' 에세이모음
작성자 김성은
작성일 2020-06-23 (화) 17:06
홈페이지 http://crane43.kll.co.kr
ㆍ추천: 0  ㆍ조회: 11      
나의 19호실은 어디에
나의 19호실은 어디에

신아문예대학 목요야간반 김성은









도리스 레싱의 ‘19호실로 가다’를 읽었다.

“이것은 지성의 실패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로 시작되는 소설은 첫 문장부터 의미심장했다. 매슈와 수전 부부는 각자 사회에서 인정 받는 인재였고, 서로의 균형 감각을 잘 알았다. 건강한 네 아이를 낳아 기르는 동안 수전은 집안에 상주하는 공기 같은 존재가 되었다. 사소하고도 지속적인 선택과 판단을 책임지며 가사 도우미 파크스 부인에게 지시하고 영혼 없는 담소를 나누는 데에도 성실했다. 매슈와의 관계에 특별한 문제는 없었다. 한 인간으로서 자아를 마주할 수 있는 절대적 고독을 갈망했을 뿐. 수전이 평범한 익명의 장소를 획득하기까지는 복잡한 착오와 오해, 구구한 설명이 필요했다.

“마침내 더러운 유리창에 ‘프레드 호텔’이라고 적혀 있는 곳을 보고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단돈 8실링, 우리 돈으로 60,000원이면 빌릴 수 있는 방이었다. 누추해도 상관 없었다. 수전은 프레드 호텔 19호실에서야 비로소 완벽한 혼자가 되었다.



 선택의 여지 없이 시각장애인으로 살아야 할 운명에 처한 내게도 절대적 고독에 대한 열망은 있다. 수전이 그랬던 것처럼 순전히 혼자이고 싶을 때 숨을 수 있는 공간 찾기가 나로서는 여의치 못하므로. 맹인에게 사생활은 없다. 어디를 가나 주변의 시선을 사로 잡고 마는 흰지팡이와 초점 없는 눈동자는 나와 아무 관계 없는 타인들의 뇌리에도 내 모습을 선명하게 찍어 놓는다.

범죄자가 아닌 이상에야 주변 사람들이 내 외모를 기억하든 말든 크게 괘념할 일은 아니지만 혼자가 되고 싶을 때마다 다른 이들의 시선을 의식할 수도 의식하지 않을 수도 없는 맹인은 무의미한 피로감에 지칠 때가 있다.

또 하나, 내가 나만의 비밀정원 혹은 19호실을 누리지 못하는 데엔 내 뿌리 깊은 두려움이 큰 걸림돌이다. 혼자가 되고 싶으면서도 막상 혼자가 되면 주변 상황에 신경을 곤두 세우느라 여유를 느끼기는커녕 오히려 안절부절 못하는 바보가 되고 만다. 이슬아나 요조 같은 젊은 여성 작가들이 세계 각국을 혼자 여행했다는 글을 보면 나는 그녀들의 용기와 자기결정권이 그렇게 부러울 뿐이다. 낯선 환경에서 노바디가 되어 오롯이 자신에게 침잠할 수 있고, 그렇게 충족되는 자기 취향의 시간은 얼마나 꿀같을까?

김영하 작가는 ‘여행의 이유’에서 노바디가 되는 해방감에 대해 말했다. 아무도 나를 모르고, 내가 소속되지 않은 이국땅에서 맛볼 수 있는 자유로움에 대해, 그것이야말로 여행의 이유라고, 기꺼이 노바디가 되어볼만하다고 썼다. 그 책을 읽고서 노바디가 되어 보는 연습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던가?

흰지팡이를 들었어도 초라하기는 싫었다. 위축된 마음을 감추고 싶어서 필요 이상 웃거나 공손했다. 퇴근 후 단 한 시간이라도 규칙적으로 쓰고 읽는 시간을 만들고 싶어 오랫 동안 궁리했다. 여느 작가들처럼 분위기 좋은 단골 카페를 물색해볼까도 생각했지만 용기가 모자랐다.  점자도서관은 차로 30분 이상 가야 닿을 수 있는 곳에 있었다. 안전하되 방해 받지 않는 공간이었으면 했다. 고심 끝에 장애인실이 갖추어져 있다는 시립도서관을 찾았지만 이용자가 없어서인지 장애인실은 본래의 기능을 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번거로운 절차를 감수하고 장애인실의 정비를 요청했다.


수전이 허름한 프레드 호텔 19호실을 찾기까지 거쳐야 했던 집안 옥탑방이나 시내 쾌적한 호텔방에서의 실패처럼 내가 장애인실에 안착하기까지는 구구하고 장황한 설명과 느리게 흐르는 시간이 필요했다. 드디어 장애인실 정비가 완료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반가운 마음으로 달려간 도서관은 코로나19 때문에 대출 업무만 가능하다고 했다. 시립도서관 업무가 언제쯤 재개될 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다.

화장실 위치를 확인하고 정비된 장애인실의 시설을 잠깐 구경했다. 당장이라도 노트북을 펴놓고 앉아 무한 독서에 몰입하고 싶었지만 별 수 없이 돌아 나와야 했다. 마음씨 좋은 활동보조 선생님과 근처 공원을 걸으며 아쉬움을 달랬다.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맞이한 인류는 비대면, 온라인 수업, 소그룹, 사회적 거리, 공적 마스크, 다중이용시설 금지 등의 경고 문구로 겹겹이 무장되었다. 진심으로 코로나19바이러스가 깨끗하게 종식되었으면 좋겠다.  K방역의 나라, 대한민국이니까. 그리하여 내 딸 유주 얼굴에 답답한 마스크도, 기약 없는 시립 도서관 휴관 조치도 훠이훠이 시원하게 풀렸으면 좋겠다.

                                                              (2020. 0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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