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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ay
'행촌' 에세이모음
작성자 김창임
작성일 2020-05-24 (일) 05:32
홈페이지 http://crane43.kll.co.kr
ㆍ추천: 0  ㆍ조회: 59      
세상에 이런 일이
세상에 이런 일이

                             신아문예대학 수필 창작 금요반 김창임





 허리가 기역자 모양으로 굽은 노인이 장갑도 끼지 않은 채, 가로수 편백 주위의 잡초를 매고 계셨다. 알고 보니 우리 숙모님이 아닌가! 현재 92세이신 숙모님은 어린 시절 나를 무척이나 예뻐하셨다. 그래서 나는 숙모님께 말도 어린 양 비슷하게 하며 지냈다.

“작은 엄니, 작은 엄니!”

하며 숙모님 뒤를 졸졸 따라다니곤 했었다. 숙모님 댁에는 우리 집에서 먹을 수 없는 팥칼국수도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어찌나 맛이 있던지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다.

 결혼한 뒤, 정읍 고 서방이 제일 멋지게 생겼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인지상정인지라 고향에 갈 적에는 남편도 숙모님 드릴 선물을 잊지 않고 꼭 준비했다. 더구나 친정어머니는 작은아버지가 한 분뿐이라며 부모님 생신 같은 특별한 날에는 꼭 숙모님 내외분을 챙기셨다. 그러니 숙부님은 날이면 날마다 밝은 모습으로 우리 집에 오셔서 재미있는 이야기도 나누고 TV도 보셨다. 그러나 숙모님은 남의 집 일하러 가신다거나 바쁘다고 하시며 잘 오지 않으셨다. 그 당시에는 함께 오시지 않는 숙모가 이해되질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여자인데도 중∙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사촌동생인 동창 H는 장남인데도 가정 형편이 어려워 진학하지 못했으니 숙모님 마음이 편치 못했으리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역지사지해보면 나 역시 숙모님처럼 그러했을 것이다. 사촌 동생 H는 고향과 멀리 떨어진 울산공업단지에서 근무했다. 학교 성적은 중 정도였지만 손재주가 숙부님을 닮아서 좋고 성실했다. 그는 가장으로서 또 자식으로서 역할을 아주 완벽히 잘하고 있다. 숙모님은 손주 셋을 데려와 내외분이 잘 길러주셨다. 이제 손주들은 잘 성장하여 결혼도 하고 직장생활에 열중한다고 한다.

숙부님은 80대 후반에 돌아가셨다. 홀로 되신 숙모님은 그런대로 사신다. 그러던 어느 날 목욕탕에서 넘어져 119에 병원에 실려가서 치료를 받으셨다. 그러다 거동이 불편해진 숙모님은 장성요양원에 들어가셨다. 그 뒤 여건이 조금 나은 백양사 인근에 있는 요양원에 계신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얼마 뒤 우리 부부는 숙모님을 찾아뵙기 위해서 먼저 백양사 인근에 있는 요양원들을 찾아보았다. 숙모님이 계신다는 요양원에 들렀는데 그곳에서는 그런 분이 계시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래서 사촌 동생에게    

 “숙모님이 안 계시니 어찌 된 일인가?”
 “요양원에서 1년 정도 계시다가 답답하여 집으로 나오셨다네.”

아직 기운이 있으신지 밭에서 채소를 가꾼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200여 평이나 되는 밭을 잘 가꾼다는 것이다.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요양원에 들어가면 주로 그곳에서 지내다가 생을 마감한다고 하는데 숙모님은 집으로 돌아오신 것이다. 참으로 놀랄 일이다. 세상에 이런 일이 다 있을까?

어제는 숙모님께 문안전화를 했더니  5월 14일 목요일에 꼭 당신 집에 오라고 하셨다. 들기름과 참기름을 준비했으니 꼭 가져가란다.  나는 남편에게 오늘 숙모님 댁에 가서 인사를 드리자고 했다. 곧바로 출발하여 숙모님과 큰올케, 작은오빠를 만나러 장성으로 향했다.

신작로 주변 편백은 어느새 가지가 옆으로 쭉쭉 뻗어 있다. 많은 가지들은 피톤치드를 만드느라 여념이 없어 보였다. 편백들이 우리 고향 사람들에게 건강을 듬뿍 선물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역력해 보였다. 그런 편백의 마음을 고향 사람들은 알기나 할까? 그 향기가 코 속으로 살며시 들어와 나의 뇌리를 상큼하게 해 주었다.

숙모님은 잡초를 대충 뽑으시고 당신 집에 가자고 해서 가보니 집안이 잘 정리 정돈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 비싼 꿀을 주시니 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가져간 것은 기껏해야 과일 한 상자인데 이 귀한 것을 주시니 감사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어른이 주시니 그냥 받아올 수밖에 없었다.

작은올케한테 들으니, 숙모님은 노령연금과 자식들이 주신 용돈을 타서 모으고 모아서 그렇게 하여 사람에게 그동안 받은 은혜를 갚겠다고 하셨단다. 세상을 떠나시기 위한 준비처럼 느껴졌다. 교회에 다니시니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시고, 많이 베풀어야 후손이 무탈하고 천국 가신다는 것을 믿고 그러시는 것 같다. 그동안 숙모님은 작은아들 내외가 손녀 둘을 남기고 하늘나라로 가버렸다. 그 아들이 학력도 제일 좋은 효자였는데 그렇게 불효한 셈이다.

그 손녀까지 뒷바라지하느라 눈물도 많이 흘렸을 것이다. 그 뒤 얼마 안 되어 또 큰 딸을 잃으셨다. 숙모님은 세상이 얼마나 원망스러우셨을까? 숙모님은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마음으로 세상을 홀로 살아오셨을 것이다. 그 고통, 우울감이야말로 말로는 표현할 수 없었으리라. 그래서 남은 자식 넷과 손주들이라도 무탈하게 살기를 간절하게 빌고 계실 것이다.

숙모님께서는 요양원에서 지나온 삶과 주변 모든 것을 살피시며 결심하신 것 같다. 요양원에서 이대로 살다 세상을 떠나서는 안 되겠다고 작정하신 듯하다. 지금이라도 집으로 돌아가 자손들과 나 자신을 위해 세상과 이웃에게 빚진 것을 모두 갚고 또 조금이라도 베풀며 살다가 세상을 떠나겠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


지금은 허리가 많이 굽은 상태라서 당신 식사 해결하시기도 벅찰 것이다. 그런데도 집안 채소밭 가꾸기는 물론, 밭 200평에 고추 들깨 등을 가꾸어 지인들에게 나누어 주신다. 그리고 신작로 주변에 나 있는 잡초까지 다 뽑아 주변 사람들의 기분이 좋아지게 하신단다. 봉사를 많이 하고 나눔을 실천하기를 바라는 하느님은 호탕하게 웃으시며 우리 숙모님을 지켜보고 계시리라 믿는다.

                                                 

                                                        (2020. 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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