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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ay
'행촌' 에세이모음
작성자 곽창선
작성일 2020-05-09 (토) 18:17
홈페이지 http://crane43.kll.co.kr
ㆍ추천: 0  ㆍ조회: 69      
동학농민혁명을 돌아보며
동학농민혁명을 돌아보며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곽창선









동학농민군이 봉기한지 126년을 맞이하여 추모하는 마음으로, 농민혁명의 과정을 살펴보려니 벅찬 느낌이 들었다. 하나의 역사적 사건을 거슬러 올라가려면 그 순환 과정이 복잡하고 주관에 따라서 다르기 때문에 매우 조심스럽다. 따라서 최초 농민운동의 발발 동기나 역사적 배경도 지역마다 조금은 다르기에 더욱 조심스럽다. 따라서 농민운동의 봉기원인과 과정은 이미 알려진 부문을 떠올리며 나름의 의미를 되새겨 보았다.



농민봉기는 최초 정읍 고부에서 1894년 3월에 일어난 민주화운동의 효시였다. 그동안 구한말 지배세력에 대한 폭동으로 알려지며 아쉽게도 ‘동학란’ 등으로 전해져 왔으나, 2019년 5월11일을 ‘동학농민혁명기념일로 제자리를 찾아 기념하게 되었다. 동학농민혁명이 발발한지 125년 동안 표류해오던 순수했던 농민운동이 ‘민주화의 상징이요 자주독립국가 주체성의 발로였음’ 을 만천하에 알리는 뜻 깊은 날이다.



지난해 고창 무장 농민봉기기념식에 다녀왔다. 그 동안 정읍 고부 기념관을 다니며 의미를 새겨 왔지만 행사에 참여하여 겪은 현장 체험은 처음이었다. 농민봉기 125년을 자축하는 행사로 고창무장 일원에서 베풀어지는 군민 행사였다. 최초 정읍 고부에서 봉기하여 관군에 패한 농민군이 이웃 고창 지역의 접주들과 협심하여 1차 봉기 성공을 기념하는 자리에 진북농악동아리가 초청되었다.



흰 보장에 대나무 죽창을 들고 머리에 흰 수건을 두르고 밀집모자를 눌러 쓴 농민군 대오가 공음 구수분교에서 결의문을 낭독하고 파랑새 노래를 합창하며 무장읍성을 향해 출발했다. 선두에는 전봉준을 필두로 좌우에 김개남 손화중의 깃발을 앞세우고 유채꽃이 만개한 비포장 황토길에 풍악을 울리며 행진하는 기분이 남달랐다. 앞뒤로 경찰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곳곳에서 관군과 교전해 가며 읍성에 다다르니 수많은 군중들의 열렬한 환영에 우쭐한 기분이 들었다. 읍성을 마주하며 밀고 밀리는 싸움 끝에 현감을 비롯한 탐관오리들을 포박하고 전봉준이 성루에 올라 “사람이 인간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다. 사람이 나라의 근본이요 근본이다. 인간이 무너지면 나라도 무너지는 것이다.” 인내천의 동학이념을 설파하고 4대 강령을 정립한 선언문을 낭독하는 장면은 압권이었다.



선언문은 농민혁명의 대의명분을 함축한 격문이 되었다. 그 동안 오합지졸이었던 농민군은 이 격문이 파급되면서 소규모로 투쟁하던 농민군이 대규모로 세를 규합하고 지휘체계를 갖춘 농민혁명군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였다.  



언론사들의 취재경쟁 속에 경내는 음악이 흐르고, 흥에 취한 우리 동아리도 멋진 풍악을 울리며 함께 자축했다. 읍성 후원에 마련된 푸짐한 먹거리 장터에서 행사에 참석한 요원들이 정담을 나누며 흥겨운 뒤풀이로 마무리를 지었다.



농민 봉기를 되돌아보면, 지정학적인 취약점을 지닌 조선은 중국대륙의 침략과 노략질을 견디며, 왜구의 음흉한 대륙진출의 야욕을 막아야 하는 이중고를 겪었다. 이러한 국가적 위기에 국력을 모아 외세를 물리치고 민심을 안정시켜야 할 조정의 위정자들은 상호 명분론으로 나뉘어 당파싸움으로 날밤을 지새노라 속절없이 국력이 무너지고 있었다. 당시 사회는 신분제도의 고착화로 대다수인 농민들은 노예나 다름없는 생활고를 겪고 있었다. 생계수단으로 국가나 개인으로부터 농토를 빌려, 조세를 바치고, 별도로 부과되는 공납이나 노역에 참가하는 이중고에 시달리는 가운데, 극심한 혼란 속에 매관매직이 일상화 되면서 탐관오리들의 수탈은 극에 달하고 있었다. 부패한 관리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며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세금 이중장부를 만들어 착취하는 것은 물론 납부를 못하는 사람에게는 체형이나 노역에 처하는 만행이 비일 비재했다. 따라서 농민들의 원성은 쌓여가고 있었다. 당시 장안의 양반들은 벼슬살이를 농지가 많은 호남지방에서 하기를 선호했다고 한다. 관리들의 착취를 가름해 볼 수 있는 이야기다.


 당시 사회적 혼란기에 나라의 주체사상인 주자학이 자리를 잃게 되며 인내천을 주창한 최재우 선생의 동학이 서민의 마음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곳곳에서 핍박에 시달려온 백성들은 사람다운 세상을 만들자는 동학계몽운동에 스스로 동참하게 되었다. 이는 곧 사람 위에 사람없다는 인내천 사상으로 서민들의 의식을 일깨우는 정신운동으로 승화되어, 부패한 관리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계기였고, 사람이 사람대접을 받고자하는 순수한 욕구였다.

익히 교과서에서 배운 바와 같이 정읍 고부에서 조병갑의 만행에 지친 농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하여 분을 참지 못한 백성들이 전 봉준을 필두로 관에 저항하는 최초의 저항이요 봉기의 시작이었다. 이어 무장 부안으로 이어지며, 1894년 4월 27일 전라감영 전주성을 점령하고 잠시 조정과 화친조약을 맺어 소강상태에 있었으나 왜구의 간계로 화친이 파기되고 말았다. 다시 농민들의 소요는 늘어나고 조정 스스로 진압하지 못하고 외세에 의지하는 우를 범하게 되었으며, 이를 빌미로 왜구가 청일, 러일전쟁에서 승리로 이끌며, 사대문을 폭파하고 고종을 인질로 삼아 친일내각을 수립하는 경술국치의 근인이 되고 말았다.



점점 나라의 전역이 청과 왜구의 전쟁터로 변하자, 소강상태에 빠져있던 농민운동은 부패한 관에 대한 항거에서 항일구국운동으로 전열을 가다듬게 되었다. 전라도 53개 군현에 집강소를 설치하고, 근대적인 폐정개혁을 추진하던 농민군은 완주 삼례에서 재결집하여 전국에 격문을 보내 일본군을 몰아내기 위한 반일 항전을 전봉준이 선두에 나서며 전국적으로 확산해 나갔다.



당시 전투에서 왜군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게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라는 노래의 가사다.  드라마로 소개된 녹두꽃에서 신출귀몰하며 왜구를 무찌르는 전봉준 장군을 응원하던 노래다. 녹두밭은 농민군을 뜻하며 녹두꽃은 전봉준 장군을 추앙하며 농민군을 응원하는 백성들의 응원가였다. 용감무쌍히 싸우던 농민군은 겨울의 찬바람을 맞으며 북상하던 중 안타깝게도 공주 우금치에서 관군과 왜군의 협공에 고귀한 생명들이 무참히 쓰러졌고, 전봉준 장군을 비롯한 동학 지도자들은 줄줄이 왜놈들의 심판대에서 고초를 겪으며 패전으로 마감하게 되었으니 비통한 마음뿐이다.



1894년 12월 포로가 되어 서울로 압송된 전봉준은 왜놈 신문관에게 “죽음은 두렵지 않으나 역적이라 칭함은 가당치 않다. 탐관오리를 징벌하고 국정을 농단하는 왜놈들을 몰아내려는 게 무슨 죄가 되는가?” 라고 일갈한 뒤 최후 진술로 “광화문 네거리에서 내 목을 베어 사대문에 피를 뿌리라” 는 유언을 남겼다고 하니, 그 기개가 대단함을 엿볼 수 있다. 그 동안 곳곳에서 희생된 무명의 농민군 유해가 구천을 헤매고 있었으나 지난해 완산칠봉에 신설된 녹두관에서 영면하게 되었으니, 농민군들의 원혼을 달래 줄 수 있어 다행이다.


동학농민혁명은 126년 전에 우리 고장 정읍에서 관리들의 학정에 경종을 울리고 외세침략에 앞장선 서민들의 구국충정운동으로 자리매김 되었다. 숭고한 서민정신으로 3.1운동, 4.19, 5.18 민주화운동의 효시가 되어 사람다운 사람을 위한 나라가 세워지는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 이제 나라의 고비마다 밝은 빛이 되어 주리라 믿는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녹록치 않다. 당시 상황에 못지않은 난제들이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중국 일본 미국 등의 외세에, 동족상잔을 촉발한 북한이 호시탐탐 노리는 것이 변수다. 순수한 이성과 지성으로만 헤쳐 나가기엔 가로 막고 선 난제들이 너무 높고 험하다. 더욱 신종 바이러스 코로나19 창궐로 세계 경제가 한치 앞을 볼 수 없으니 모두의 불안은 커가고 있으니, 해법을 찾기가 묘연해질 뿐이다.

지금처럼 동서로 갈려 이념의 대결을 치닫게 된다면 나라의 안녕이 매우 불안하다. 126년 전 우매한 농민들의 절절한 절규를 잊지 말아야할 시기다. 이제 총선으로 힘을 모았으니 반대를 포용하며 파당적 이념을 배격하고 국가의 불안을 해소하는 장의 마련에 앞장 서야 한다. 형 만한 아우가 없다는 격언을 되새겨 보기를 간절히 바라는 이유다.

                                                                            (2020. 5.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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