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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ay
'행촌' 에세이모음
작성자 김성은
작성일 2020-03-22 (일) 15:28
홈페이지 http://crane43.kll.co.kr
ㆍ추천: 0  ㆍ조회: 10      
스키와 자전거
스키와 자전거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김성은









정확하게 수요일 저녁 8시 30분, 전화벨이 울렸다.

“Hi, 성은? How are you today?”

“I am fine, thank you and you?”

“Did you do your homework? What was your topic?”

“Yes, I did. My homework was forte of my spouse.                 ”



배우자의 장점을 영어로 말하는 것이 그 날 내 숙제였다. 스피치를 준비하면서 자연스럽게 남편이 내게 선사했던 많은 순간들이 스쳐갔다. 2000년도 2월에 처음 알게 되었으니 이 남자를 알고, 설레고, 사랑하고, 결혼하고, 아이 낳고, 서운하고, 원망하고, 다시 웃어 버린 세월이 무려 20년이었다. 나는 서툰 영어로 말했다.

내 남편은 내게 넓은 세상을 보여 주었다고, 못말리는 유머로 나를 웃게 해준다고.

 코로나19 사태로 개학이 3주 연기되었다. 홈스쿨링하는 기분으로 딸 유주에게 연산과 독서를 지도하면서 오전 시간을 보냈다. 미세먼지 상태를 살핀 남편이 유주에게 자전거 연습을 제안했다. 무슨 생각이 있었는지 남편은 유주에게 엄마 자전거 잘 탄다며 나가서 한 번 보라고 큰소리를 쳤다. 유주는 제 자전거를 끌며 앞서 가고, 남편은 자기 자전거를 끌면서 한 쪽 팔로는 나를 안내했다. 평일 낮이라서 그런지 이웃 초등학교 운동장은 텅 비어 있었다. 두 발 자전거에 이제 막 도전하는 유주였지만 금세 균형을 잡고 폐달을 밟았다. 유주가 감을 잡자 남편은 기다렸다는 듯이 내게 자기 자전거를 넘겨 주었다.아무도 없으니 그냥 마음 놓고 타라고 했다. 안장 높이를 조정하했으나 내 몸은 뻣뻣하게 굳어 앉았다. 초등학생 때 동생을 뒤에 태우고 비호처럼 달렸던 실력은 온데간데 없었다. 온몸이 경직되어 있으니 균형이 잡히지 않고, 핸들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남편이 방향을 일러 주었지만 두 팔이 뻐근하도록 손에는 힘이 들어갔다. 자전거에 속도가 붙으면 오히려 더 겁이 났고, 넘어질까 두려웠다. 10분도 안 되어 포기를 선언하는 내게 남편이 말했다.

“유주 뒤에 한 번 안 태워줄 거야? 괜찮으니까 계속 타봐.”

함께 자전거를 끌고 나와서 이렇게 탈 수 있는 기회도 흔치 않은데 포기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자전거에 올라 탔다. 30분 가량 폐달을 밟고 나니까 몸에 경직이 조금씩 풀렸다. 유주가 경주를 청했다. 커브 연습을 하던 유주도 완전 긴장이 풀린 것 같았다. 아빠는 가운데서 뛰고, 엄마랑 딸은 양 편에서 자전거로 달렸다. 남편이 유주에게 말했다.

“엄마 뒤에 타봐. 아빠가 사진 찍어줄게.”

머뭇거리던 유주가 내 자전거 뒤에 올라탔다. 유주를 뒤에 태우니 감회가 새로웠지만 여유는 없었다. 아이를 다치게 하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로 몸은 다시 굳었고, 내 근육이 경직되는 속도만큼 자전거는 빠르게 비틀거렸다. 얼마 못 가서 아이를 내려 놓았다. 짧은 영상은 꿈같은 순간을 생생하게 저장했다.



 대학 1학년 때 나는 강원도에 있는 보강 휘닉스파크에서 진행된 장애인 스키 캠프에 참가한 일이 있었다. 눈길에서 미끄러지는 스키 감촉에 완전 반해서 겁도 없이 중급자 코스에 올라갔고, 신나게 탔다. 용인대를 비롯한 한국체육대학교 특수체육과 재학생들이 자원 봉사자로 나서서 개인 레슨을 해주었다.  1대1로 매칭된 봉사자들이 짝꿍 장애인 뒤에 바짝 붙어 육성으로 일일이 방향을 일러주며 스키를 탔었다. 나와 같은 시각장애인들이 스키를 탈 수 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하반신이 불편한 지체장애인들이 앉아서 타는 바이스키라는 것도 그 때 처음 알았다. 스키를 타고서 뱃장 좋게 슬로프를 가르던 스무살 여대생은 두 발 자전거에 걸터 앉아 주춤거리는 중년이 되었다. 추운 줄도 몰랐던 그 겨울 스키장 안에 경쾌하게 울려 퍼지던 코요태 순정의 리듬이 기억 저 편에서 아련히 들려오는 듯했다.

‘내가 어떻게 스키를 탔을까? 평지에서 자전거 타는 것도 이렇게 무서운데….’ 20년 사이 내 안에는 두려움만 무성하게 자란 것 같다. 결단력이나 도전의식도 숨죽은 야채처럼 물컹해져 버린 한 아줌마가 자전거에 앉아 쩔쩔 메고 있었다. 스키를 탔던 스무살 때나 자전거에 앉아 있는 지금이나 눈이 안 보이는 것은 매한가지이건만, 어쩌다가 나는 이토록 무력한 겁쟁이가 되고 말았을까? 내가 잠깐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도 남편은 모녀의 뒤를 봐주느라 분주했다. 남편의 집요한 권유가 아니었다면 나는 자전거에 앉아볼 엄두도, 형편없이 위축되어 버린 내 모습도 알아차리지 못했으리다. 관성에 떠밀려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순한 껍데기로 살았을지 모르겠다. 때로는 천적 같이 나를 몰아 세우지만 그로 인해 내가 체감하는 세상은 꽤나 극적이다. 곁에서 뛰어주는 남편을 믿고 기운차게 폐달을 밟았다. 시원한 바람이 기분 좋게 내 마음에 순풍을 불어 넣었다.

                                                                                                 (2020. 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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