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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ay
'행촌' 에세이모음
작성자 최정순
작성일 2019-11-12 (화) 16:19
홈페이지 http://crane43.kll.co.kr
ㆍ추천: 0  ㆍ조회: 303      
속 찬 여자
속 찬 여자                        

안골노인복지관 수필반   최 정 순





 일향(一向)!  

하며 내 호를 불러본다.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 ‘정순(貞順)’이를 부르는 것보다 왠지 품위가 있고 우아한 느낌이 든다. 부르기도 좋고 뜻을 풀이해 봐도 그럴싸하다. 사실은 첫 수필집《속 빈 여자》를 출간하면서 내 이미지 변신을 하고 싶어 호를 하나 갖고 싶었다. 무어라고 할까, 고민했다. 닠네임이 '해바라기'여서 해바라기처럼 웃는 낯꽃으로 올곧게 한곳만을 향하여 바라본다는 뜻으로 ‘일향’이라 지었다. 본명과도 일치한다. 곧을 ‘貞’ 순할 ‘順’이  바로 그렇다. 뜬금없이 내 호를 들먹이며 글을 쓰자니 조금은 어색하고 부끄럽다. 부끄럽지 않으려면 앞으로 일향이라는 ‘호값'을 해야 할 일이다.  



 학창시절에 문학이니, 문학소녀란 말을 들어본 일이 없다. 국어시간에 위문편지를 썼지만 답장을 받았거나 펜팔을 해 본 일도 없다. 그렇다고 일기를 꼬박꼬박 썼다거나, 동화책은 고사하고 만화책도 제대로 읽지 못했다. 한마디로 독서량이 빵점이었다. 초·중·고등학교시절부터 ‘문학’과는 거리가 멀었다. 감수성이 예민한 여고시절에는 누구라도 시를 알든 모르든 시집 한 권 쯤은 액세서리처럼 멋스럽게 들고 다녔다. 나는 그런 멋도 부려보지 못했다. 도내·교내 글짓기대회는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교내 웅변대회에 의무적으로 한 반에 한 명씩 출전을 해야 했다. 반장이었던 나를 내세워 노심초사했던 일이 새삼스럽다.



 그때 웅변지도를 하신 ‘신동우’ 선생님은 세계적인 영국의 희극배우 찰리 채플린을 닮았다. 눈과 코만 빼꼼하고 귀밑에서부터 턱 밑까지 그야말로 남성미를 자랑하는 구레나룻이 인상적이었다. 거기다가 작달막한 키에 둥글게 튀어나온 엉덩이는 오뚝이 같아 귀엽기까지 했다. 걸음걸이와 목소리는 박력이 넘쳐 마치 탁구공처럼 통통 튀었으며, 눈초리는 매서웠다. 항상 손엔 반질반질한 지휘봉과 다른 손에는 뭔가 빼곡히 적힌 원고지를 들고 있었다. 무엇인가를 해내야 한다는 야망으로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이 생동감 있게 보였다. 국어에 약한 나는 이런 선생님의 기세에 눌려 원고를 외우기는커녕 제대로 읽지도 못하고 예선에서 탈락되고 말았다. 탈락된 게 오히려 잘 되었다는 생각을 했으니 선생님이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엄밀히 말하면 이때 처음으로 나는 문학과 첫 대면을 한 셈이다. 학창시절을 통틀어 잊지 못할 선생님을 꼽는다면 예쁨은 받지 못했지만 초등학교 때는 신동우 선생님이고, 고등학교 때는 나를 참 예뻐하셨던 ‘유영수’ 음악선생님이 생각난다. 이에 앞서 몇 년 전에 대한문학으로 등단하신 신동우 선생님을 행사 때 뵈었다. 옛날 그 모습은 간곳없고 하얀 수염이 세월을 말해주고 있었다. 내가 먼저 찾아가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인사를 드렸지만 60여 년의 세월 앞에 선생님은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래도 서운하지 않았다.


 나는 스물넷에 결혼하여 딸 하나 아들 둘 삼남매를 두었다. 원래 학구파였던 남편은 고등고시 준비생이었는데 뜻을 이루지 못하고 영어선생님이 되었다. 성격은 호탕하기보다는 깐깐한 편이었다. 무릎신경통과 위장병을 달고 살았으며 술·담배는 아예 입에 대지도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아마 애들이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가 아니었나 싶다. 남편은 애들한테 숙제를 내주고 출근을 했다.  



 “오늘 해야 할 일”

한자(漢子) 3개, 영어단어 3개를 꼭 쓰고 외워야 했다. 덤으로 나한테도 숙제가 배당되었다. 시간이 없으니 나더러 대신 신문을 읽고 그 내용을 전해달라는 것이었다. 어찌나 한자가 많은지 신문을 읽을 수가 없었다. “책 좀 읽어라, 신문 좀 읽어라.”는 소리를 무척 들었는데 나는 그 숙제를 하지 않았다. 그때는 참 하기 싫었다. 하고 싶은 것은 뜨개질뿐이었다. 아버지가 무서워 애들은 열심히 했다. 숙제를 마친 세 녀석들은 tv 앞에 앉아 어린이 프로그램을 눈이 빠지게 보다가도 대문 벨소리가 나면 얼른 tv를 끄고 잽싸게 각자 책상 앞에서 공부하는 척했었다. 엄마인 나도 아빠가 무서웠는데, tv를 만져 보면 금방 들통 날 것을 아는 애들이야 오죽했을까? 만약에 애들이 공부를 못했더라면 모두 다 내 탓이라고 했을 것 같다. 이제야 그때 열심히 한자공부도 하고 책도 많이 읽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벌써 40여 년 전의 이야기를 엊그제 일어난 일처럼 아무런 생각 없이 하고 있다. 그래도 그 때 그 시절이 마냥 그립다.



 이제 쥐구멍에 볕이 들었다. 아들 딸을 서울로 창원으로 짝지어 보내고 나니 내가 보였다. 문학에 문외한인 나는 “들녘 소경 머루 먹듯이” 덤벙 뛰어든 곳이 바로 ‘수필’세계였다. 그 때 김학 교수님을 만나 14년 가까이 주변에서 맴돌고 있다. 2006년 가을에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에 등록하여 2007년 7월에 대한문학 가을호에서 등단. 그야말로 고속으로 달렸다. 그때는 1주일에 한 편 아니면 2주에 한 편 정도 수필을 썼다. 선경지명이 있었던지 컴퓨터를 배워 둔 것이 다행이었다. 2012년 7월에 60여 편의 작품으로 수필집≪속 빈 여자≫를 출간했다. 내 새끼가 제일 예쁜 법이다. 어찌나 책이 사랑스러웠는지 모른다. 지금도 역시 사랑스럽다. 그러던 어느 날 김학 교수님께서 소개해주셨다. KBS1라디오 전주방송국에서 방송하는 "내 인생에 책 한 권"이란 프로그램이었다. 지금은 없어진 프로그램이지만. 그 당시는 매주 금요일 오후 5시~6시 사이에 진행되었다. 전화통화를 하고 ‘장지연’이란 리포터(reporter)가 도립국악원으로 나를 찾아왔다. 간편한 청바지 차림의 리포터와 녹음을 해야 했기에 조용한 곳으로 갔다. 내용은 자기가 감명 깊게 읽은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솔직히 독서량이 많지 않고 감명 깊게 읽은 책이라고는 소설 ‘동의보감’ 상·중·하권이 머릿속에 남아 있지만 조리 있게 이야기할 자신이 없었다. 나는 내가 쓴 수필집 ≪속 빈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리포터와 주고받았다. 30여 분 동안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남의 책을 이야기 하는 것보다 훨씬 수월했다. 정작 내 책에 대한 이야기를 녹음할 때는 편안한 마음이었는데, 2012년 10월 3일 금요일 오후 5시40분쯤 내 목소리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순간에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잘 편집된 5분3초짜리 녹음테이프가 지금도 인터넷에 저장되어 있다. 7년 만에 처음 공개한다. 『내 인생에 책 한 권』이라는 테이프는 내 인생에 ‘으뜸보물’이다.  


 7년 전 첫 수필집 제목을《속 빈 여자》라고 정했을 때 몇몇 친구들이  왜 '속 빈 여자냐'며 차라리《속 찬 여자》로 고치라며 조언을 해주었던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나는 수필 ‘속 빈 여자’에서 이렇게 말했다 “비어있다는 것은 새로운 것을 채울 수 있다는 뜻이다.”라고. 나는 지금 속이 비어 허한 여자다. 무엇으로 채워야 할까? 수필을 먹고 먹고 또 먹어《속 찬 여자》가 되고 싶다. 오늘도 컴퓨터에 앉아 수필을 먹고 있다. 허겁지겁 먹지 않고 잘 씹어 차분하게 먹고 있다. 그런 나를 누군가가 “일향” 하며 부른다.

 “수필삼매경에 빠진 모습이 보기 좋네 그려!”  



                                                    (2019.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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