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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ay
'행촌' 에세이모음
작성자 김성은
작성일 2019-11-12 (화) 06:51
홈페이지 http://crane43.kll.co.kr
ㆍ추천: 0  ㆍ조회: 71      
나는 굽은 나무다
나는 굽은 나무다
-엄마의 바다(2)-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김성은









외할머니가 익산에 오셨다.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이었을 때 할머니는 우리 집에 오실 때마다 잠자리에 누워 맛깔나게 옛날 이야기를 들려 주셨다. 시골 집에 개 밥을 주어야 한다며 한사코 서둘러 짐을 꾸리셨던 할머니는 엄마아빠가 부부 동반 여행길에 오를 때마다 우리를 돌봐 주셨다.

바쁘게 등교를 준비하는 내 입에 할머니는 따끈한 밥을 반찬과 함께 넣어 주셨었다. 뜨개질의 명수인 할머니께서는 내 딸 유주가 주문하는 신생아 모자를 하루 만에 완성하셨다. ‘세이브더췰드런’ 모자 뜨기 제품이었다. 수공예라면 무조건 덤비고 보는 내 취향을 닮아 유주도 만들기 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OK다. 내가 습관적으로 접는 종이거북 만들기는 이미 유주가 1학년 때 전수한 터였다.

대바늘 뜨개질은 아무래도 눈 감은 내가 하기 어려워서 친정 어머니 도움을 받아 유주에게 가르쳐 주고 싶었다. 그런데 때마침 증조 할머니가 거짓말처럼 솜씨를 뽐내신 거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서는 내 손에 유주가 요란하게 털모자를 건네 주었다. 앙증맞은 모자 꼭대기에 수술까지 달려 있었다. 너무 사랑스러워서 훌쩍 커버린 유주 머리에라도 씌워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내가 유치원에 다닐 때 엄마는 내 조끼며 스웨터를 손수 뜨개질로 만들어 입혀 주셨다. 소매를 몇 번 접어서 입다가 팔이 길어질수록 한 칸씩 펴 나갔다. 지점토 공예로 텔레비전 받침대며 화장실 문패를 익살스럽게 만들어 장식했던 엄마는 관심이 있는 동네 아줌마들을 모아 우리 집 거실에 공방을 열기도 했었다. 장미꽃과 포도송이가 어우러지고 그 사이사이 우리 세 자매의 사진이 꾸며졌던 엄마의 작품들은 온집안을 밝게 물들였다. 눈 먼 딸을 걱정하시느라 평생 마음 속에 돌덩이 하나 얹고 사는 친정 어머니도 외할머니께는 애틋한 딸이었다. 바쁘게 나와 유주의 아침 식탁을 챙기는 친정 어머니 식사를 외할머니가 걱정하고 계셨다.



유주는 1학년부터 집 앞 태권도학원에 다니고 있다. 학교 친구들이며 태권도 동생들과 두루두루 친한 유주는 종종 우리 아파트 같은 라인 7층에 사는 소희를 데리고 집에 왔다.  엘리베이터만 타면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둘은 서로의 집을 오가며 밥도 먹고 놀이터에도 갔다. 소희도 엄마가 일을 하신다고 했다. 유주와 비슷하게 할머니가 돌봐 주고 계셔서인지 친근한 느낌이었다. 우리 집에서 도란거리며 노는 녀석들에게 나는 주먹밥을 만들어 주기도 하고 과일을 깎아 주기도 했다. 내 공간이었으므로 딱히 불편할 건 없었다.



며칠 전 퇴근길이었다. 지하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데 1층에서 누군가가 탔다. 반사적으로 “안녕하세요?” 했는데, 대답이 없었다. 어딘가 상대방이 멈칫하는 느낌이 있었지만 특별히 더 건넬 말은 없었다. 그런데 함께 탄 사람이 7층에서 내리는 게 아닌가!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으므로 그 사람이 성인인지, 어린이인지, 남자인지 여자인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순간 소희는 아니었으면 하는 조바심이 일었다. ‘소희였으면 어떻게 하지? 유주 언니의 엄마가 하얀 지팡이를 들고 엘리베이터에서 나한테 존댓말을 했다고, 어린 마음에 유주를 놀리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지?’



실명한 후 자꾸만 혼탁해지는 눈동자 때문에 의안수술을 고심했었다. 웨딩 촬영을 앞두고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가서 전문가에게 직접 상담을 받아 보기도 했으나 결심이 서지 않았다. ‘안구 적출’이란 두 단어 자체로 나는 이미 공포에 질렸고 말도 안되게 부담스러운 비용도 내 선택을 방해했다. 안구 적출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그 사고가 아니었다면 아마 나는 끝까지 감행하지 못했으리라. 2009년 겨울, 우연한 부상으로 한 쪽 눈이 파열되어 응급으로 안구 적출 수술을 받았다. 전신 마취를 하는 길에 그냥 양 안을 모두 적출하는데 동의하고 수술실에 들어갔다. 커가는 유주를 위해 어쩌면 잘 된 일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의안을 제작하고 관리 방법을 익히는 과정이 만만치 않았지만 가족들의 보살핌 덕택에 적응할 수 있었다. 외관상으로는 시각장애인이 아닌 것 같은 눈동자가 되고 보니 아무래도 인상이 훨씬 좋아졌다는 반응들이었다.

무엇보다 유주 어린이집 방문 때나 처음 만나는 아이들을 대면할 때 마음이 한 결 편안했다. 병원비는 4인 가족이 하와이 여행을 다녀올 수 있는 금액이었다. 빠듯한 살림에 속이 터졌지만 얼굴에 흉터 없이 무사히 수술 받았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내가 안구 적출 수술을 받고 의안에 적응해 가는 동안 친정 어머니는 평생 그래오셨 듯 내 뒤를 묵묵히 지켜 주셨다. 회복된 다음에야 엄마는 말씀하셨다.

“흰지팡이 꼭 챙겨 다녀야 해. 그 전에는 부딪혀도 사람들이 눈 보고 이해했지만 이제는 아니니까. 요즘 사람들 무서워서 혹시라도 너 시각장애인인 줄 모르고 부딪히기라도 하면 해코지할까 걱정이다.”

엄마는 내 눈이 시각장애인 같았을 때도 그렇지 않을 때도 똑같이 노심초사하고 계셨다. 내가 유주를 위해 의안을 택하고도 엘리베이터에서 순간 맞닥드린 불안과 꼭 같은 걱정을 엄마는 벌써 30년이 넘도록 하고 계셨다. 이 불효를 무엇으로 용서 받을까?



엄마가 농사를 지어 끓여 주신 배추국으로 든든히 아침을 먹고 출근했다. 브로컬리며 알타리며 고추며 콜라비까지 서울 어르신들인데도 수확이 좋다. 다음 주에는 농사 지은 배추와 무로 김장을 담그신다고 했다. 동생들이 내려와서 일손을 거들면 나는 마트에 들러 고기랑 소주를 넉넉히 사고 유주와 조카들 먹을 간식을 푸짐하게 골라 기분 좋은 걸음으로 퇴근할 거다.

부모님은 내게 세상을 감각할 수 있는 신체를 주셨다. 더불어 날마다 새롭게 갱신되는 내 삶의 의미가 되어 주셨다. 가을 풍년 같은 감사로 당신들의 사랑에 보답하고 싶다. 굽은 나무가 선산 지킨다는 옛 속담도 있지 않던가? 그렇다. 나는 굽은 나무다.

                                                                                       (2019.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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