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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ay
'행촌' 에세이모음
작성자 김성은
작성일 2019-07-17 (수) 15:08
ㆍ추천: 0  ㆍ조회: 14      
나에게 쓰 기란
나에게 쓰기란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김성은











자칭 문장 수집가인 은유 작가를 알게 되고. 전국 도서관을 샅샅이 뒤졌다. ‘쓰기의 말들’, ‘글쓰기의 최전선’,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등 그녀의 글쓰기 노하우가 담긴 산문집이 발견될 때마다 다급하게 책마루 버튼을 눌렀다.

나는 글쓰기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실명하고 20년이 넘도록 내 취미는 독서였다. 무언가를 끼적거리는 행위는 내 유일한 숨통이었다. 학창 시절, 점자로 쓴 일기를 깔끔하게 제본하기 위해 대형 서점을 전전하며 각종 바인더북을 샀고, 부피가 큰 점자일기는 라면 박스에 차곡차곡 담겼다.

저자는 ‘쓰는 사람들의 모임’을 슬픔의 공동체라고 일컬었다. 글쓰기 교재로 슬픈 책을 선정하는 이유가 기쁨은 누구나와도 나눌 수 있지만 슬픔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식 글쓰기 훈련을 받은 적이 없는 저자가 덤덤하지만 날카롭게 풀어내는 문장들에 나는 금새 매료되었다.

나는 사소하거나 그렇지 않은 물리적 제약 앞에 사납게 저항하기보다는 체념을 택하는 유형의 인간이다. 묵묵히 인내하거나 포기하는 것에 이골이 났고, 굳이 능동적이지 않으며 미련하다 싶을만큼 무난한 평화주의자다. 7년 동안 동거했던 안내견이 은퇴했을 때에도 요란하지 않게 산책하고 싶은 열망을 삼켰다. 답답한 순간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울거나 쓰는 일 뿐이었다.



작가는. 청소년들이야말로 사회적 표정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중·고등학생 대상으로 글쓰기 수업을 나가 칭찬하는 뜻으로 “어떻게 학생들이 이렇게 글을 잘 써요?” 했다가 “어떻게 여자가 글을 이렇게 잘 쓰시나요?”라는 질문을 받으시면 기분이 어떠시겠느냐는 예상치 못한 반격에 투명한 편견을 깨달았다고도 했다.

시각장애가 있어서인지 나는 유독 편견이라는 단어를 일상적으로 체감한다. 사회적 표정이 없다는 표현에도 내 생각은 오래 머물렀다. 실명하고 인간 관계가 잘 만들어지지 않는 것에 나는 꽤나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실명하기 전에 절친했던 친구와 멀어진 느낌이 들 때라든지, 낯선 사람들을 만났을 때 나도 모르게 경직되는 순간이라든지, 딸아이의 티없는 행동에 필요 이상의 우려 섞인 해석들이 난무할 때라든지, 내 장애가 두드러질 때마다 나는 고슴도치처럼 온몸에 가시를 세웠다.

실명한 뒤 나는 거울 앞에 선 적이 없다. 사진 찍는 것도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면서 내 표정에 대한 관심이 점점 흐려졌다. 특히 소리가 없는 공간에서는 곁에 사람이 있다는 것조차 까맣게 잊어버릴만큼 내 안에 매몰되어 버릴 때가 있다. 그럴 때 내 표정이 주변 사람들에게 무방비로 노출되고 만다는 사실을 지난 세월 동안 미처 인식하지 못했다. 자신의 감정을 굳이 포장하거나 숨기지 않는 청소년들의 표현 방식이 성장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표출되는 건강한 내적 변화라면 시각장애인들의 무표정이나 화난 것 같은 무감한 얼굴은 사회적 기술 측면에서 훈련 받아야 할 중요한 영역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아는 전맹 청소년 Y의 경우도 그렇다. 거의 10년 가깝게 한 교회를 다니고 있는 Y는 태어날 때부터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즉 자신의 표정에 대해 인지할 수 있는 시각적 경험이 전무하다. Y는 성실하게 주일을 지키고 예배를 마치면 점심 식사까지 했다.


하지만 그 오랜 시간 동안 한 교회를 다녔어도 Y에게는 같은 또래 비장애인 친구가 단 한 명도 없다. Y의 인간 관계 폭은 무척 좁았다. 더러 비장애인 친구들을 만날 기회가 있어도 친교를 나누거나 지속적으로 연락을 주고 받을만큼의 유대 관계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에 건널 수 없는 강은 있다. 이 두터운 벽을 노크하는 최초 인식이 상대의 물리적 표정이 아니었을까?

로봇처럼 딱딱하게 굳은 표정 혹은 완전히 자기 세계에 몰입하여 지금 이 공간을 까맣게 잊은 듯한 표정들이 곁에 있는 비장애인들에게 낯선 거리감을 줄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적 표정이 없는 사람들은 청소년 뿐만이 아니었다. 바로 두 눈을 감고 사는 내 얘기였다.

그런가 하면 작가는 내면의 아픔을 글로 쓸거냐, 술로 풀거냐 수시로 갈등한다고 했다. 나 역시 저녁마다 맥주와 넷북 사이에서 갈팡질팡 너무나 익숙한 순간이었으므로 웃음이 나왔다. 마음대로 외출하기 어려운 날이면 맥주를 마시며 하염없이 화면 해설 드라마를 들었다. 책이나 드라마, 영화를 듣는 행위는 내 감정의 열기를 고요하게 식혀 주었고, 무언가를 쓰는 작업은 내 마음의 떼를 박박 밀어낸 것 같은 기운함을 안겨 주었다. 글쓰기가 주는 건전한 카타르시스에 중독되어 나는 쓰기를 사랑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미치게 존경하는 작가들도 여럿이다. 정유정, 김이설, 최진영, 장강명, 이기호, 노희경, 이슬아, 문유석, 오쿠다 히데오, 미우라 아야꼬 등. 은유 작가는 말할 것도 없다.

다가오는 말들을 펴낸 은유 작가 북콘서트에 직접 다녀왔다. 증산도서관에 참가 신청하는 순간부터 내 심장이 뜨겁게 요동쳤다. 작가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몇 마디 이야기도 나누었다. 내 장애가 주는 중압감을 다 날려버릴만큼 가슴 떨리는 행복감이 내 마음을 덮쳤다. 잘 쓰고 싶었다. 체념의 달인인 나도 글쓰기에서만큼은 낯선 욕망이 꿈틀거렸다.

좋은 책을 읽고, 사랑하는 저자의 신간을 검색하고, 대체도서 제작을 신청하는 사이버 공간에서만큼은 두 눈 감은 나도 자유다. 엉덩이 붙이고 앉아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을 가지런히 써내려간다. 오롯이 나를 발견하고 공부하는 시간이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안아 주는 치유의 쓰기다.

                                                                    (2019.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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