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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ay
'행촌' 에세이모음
작성자 김성은
작성일 2019-07-15 (월) 14:59
홈페이지 http://crane43.kll.co.kr
ㆍ추천: 0  ㆍ조회: 62      
안마봉사활동을 다녀와서
안마봉사활동을 다녀와서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김성은











발과 다리가 심하게 부어 있었다. 말도 잘 못하는 환자를 동생이 곁에서 정성스레 간호하고 계셨다. 발에 크림을 바르고 무릎까지 정맥 순환을 촉진하는 수기를 택해 차분하게 시술했다.

2019학년 들어 두 번째 봉사활동이었다. J병원 호스피스 병동에서 암환자 보호자를 대상으로 하는 자리였다. 첫날에는 학생들과 인솔 교사 모두 병원 탕비실에서 의자를 깔고 시술했다. 간병인, 병원 직원들이 피술자가 되어 우리 손에 아픈 어깨와 목 등을 맡겼다. 학생들은 익숙한 솜씨로 환자들을 대했고, 상냥한 웃음으로 성의를 다 했다.

그날 내 피술자는 젊은 사회복지사와 덩치 좋은 간병인 아주머니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술했고, 심상한 기분으로 철수했다. 학교로 돌아오는 통학 버스 안에서 J학생이 췌장암 말기 환자를 안마했는데, 자리가 불편해 더 못해준 것이 아쉽다고 했다. H여학생은 안마 봉사가 처음이라서 내심으로 긴장을 많이 했는데, 피술자들이 너무 좋아하는 모습에 보람을 느꼈다고 했다.

호스피스 병동으로 봉사 활동을 들어가면서도 내가 직접 말기암 환자를 마사지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두 번째, 병원을 방문하여 실습 준비를 하고 있는데 병실에서 거동이 불편한 환자분이 안마를 요청하셨다는 전갈이었다. 학생들을 보내기 조심스러워 내가 직접 나섰고, 그렇게 난 그 분의 퉁퉁 부은 다리를 마주했다. 50분 가량 신중하게 시술했다. 혹여 내 손 기술이 환자에게 해가 될까 겁이 났다. 다행히 환자분은 목소리로 직접 “좋다, 싫다.”를 표현할 수 있었다.  살얼음을 만지듯 시술을 이어갔다. 왼발부터 배운대로 순서에 따라 발가락 하나하나까지 마사지했다. 남의 발이었지만 더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옆에 계신 보호자가 갑자기 탄성을 질렀다.

“어머, 언니가 주무세요.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투병하시면서 통증 때문에 잠을 통 못주무셨다고 했다. 혼곤한 잠에 빠진 환자분을 뵈니 내 마음도 좋았다. 보호자분께만 조용히 인사하고 병실을 나왔다. 생기 넘치는 학생들을 만나니까 비로소 긴장이 풀렸다. 시험 문제 하나하나에 신경을 곤두 세우며 치열하게 공부하고, 왁자하게 떠드는 학생들이 더없이 반가웠다. 시한부 선고를 받고 병실에 누워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는 환자분들을 직접 뵙고 보니, 그간 까맣게 잊고 있었던 생에 대한 열망이 사납게 꿈틀거렸다.

저번 주에 J학생이 시술했던 췌장암 말기 아저씨는 혼수 상태라고 했다. 벼랑 끝에 서서 외롭게 병마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환자들의 고통이 무겁게 다가왔다. 내 장애를 탓하며 끝도 없이 세상을 원망했던가? 두 눈에 붕대를 감고 침대에 누워 꼼짝 없이 1주도 좋고 한 달도 좋은 병원 생활을 했었다.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문병은 받는 걸로만 알았다. 학창시절을 통틀어 개근상은 한 번도 받아본 적 없었고, 특수교육과에 진학하면서도 남다른 포부나 의지 같은 걸 품어보지 않았다.

딸 유주를 낳고서 꼬박 5년남짓 지독한 불면증에 시달렸다. 첫 아기가 주는 설렘과 기쁨은 경이로웠지만, 어린이집 재롱잔치 현장에서 객석에 앉아 자꾸만 스며 나오는 눈물을 들키지 않으려 안간힘 쓸 때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남편이 육아 휴직을 선택하여 내가 가정 경제를 책임졌던 시기, 생전 처음 참여하는 국정 교과서 집필 작업 업무로 서울 출장이 잦았다.


밤새 한 잠도 이루지 못한 채 피곤한 심신으로 서울에 올라가 집필 수칙과 문서 양식 등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당일 저녁 익산으로 내려오는 KTX 안에서 나는 등바지 깊숙이 지친 몸을 기대고 생각에 잠겼다.

‘이대로 모든 것이 끝나 버렸으면….’

체력적으로나 정서적으로 그 땐 완전 소진 상태였다. 남자 몸으로 육아에 뛰어든 남편도 전쟁 같은 시간을 살았다. 각자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느라 우리 부부는 서로를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내게 주어진 눈 먼 생을 차갑게 관조했다. 총칼이 난무하는 전쟁터 한 복판에 나만 무기 하나 없이 내동댕이 쳐진 것처럼 불안하고 억울했다.  나를 사랑하지 못했으니 남을 사랑할리 만무했다.



 금요일 오후 안마 봉사 활동을 마치고 퇴근했다. 내게는 환자들이 가지지 못한 불금이 있었다. 남편과 마주 앉아 맛있는 해물찜을 먹었다. 직장에서의 소소한 일과를 얘기했고, 여름 휴가 때 유주랑 셋이서 맞춰 입고 다닐 가족티셔츠도 샀다.  눈 먼 삶이라도 상관 없었다. 내가 지금 숨쉬고 있는 공간이 병원이 아님에 안도했다.

눈물을 펑펑 쏟으며 읽었던 정유정 작가의 소설 ‘진이, 지니’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보노보 지니 몸 속에 갇힌 진이가 주인에게 생을 돌려주는 그 선택이, 중환자실에서 꺼지기 직전의 불씨로 남은 육신 안으로 뚜벅뚜벅 걸어가기까지 진이를 휘감았던 집채만한 두려움이 비로소 실감났다.

무더운 여름 집에서 아무렇게나 걸치고 있는 허름한 옷처럼 내게 만만해진 시간과 공간이 새삼 고마웠다. 너무 익숙해서 거리감을 잃어 버린 편한 사람들이 다시 보였다.  맑은 마음으로 사랑할 수 있을까? 찬란한 생명 그 자체에 감사하며, 기쁨과 나눔으로, 희열과 성취로 나를 가꿀 수 있기를, 타인을 사랑할 수 있기를 기도했다.

                                                                                    (2019.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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