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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ay
'행촌' 에세이모음
작성자 정석곤
작성일 2019-06-27 (목) 05:33
홈페이지 http://crane43.kll.co.kr
ㆍ추천: 0  ㆍ조회: 15      
장모님 쌈터 찾기
장모님 쌈터 찾기

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정석곤









 장모님은 한 가지 소원을 간직하고 계셨다. 장모님께서 태어나신 자라신 마을에 한 번 다녀오길 바라신다는 말씀을 맏딸인 아내에게 들은 지 꽤 오래됐다. 장모님은 쌈터가 전남 나주이시고, 일본 오사카에서 자라셨다. 언제 우리가 어머니를 모시고 나주라도 다녀오자는 아내의 말이 생각나곤 했다. 사는 게 뭔지 바쁘다는 핑계만 대며 그저 미룩미룩 지내왔다.



 몇 년 전부터인가 장모님은 멀리 돌아다니기가 불편하시고, 게다가 두 해가 넘게 장인 어르신의 병간호 하시느라 집을 비울 수가 없었다. 6월 6일은 장인어르신의 1주기 추도의 날이다. 이튿날 5남매가 어머니를 모시고 고향인 나주를 찾아가 보자는 큰 처제의 의견에 따르기로 했다. 간밤에 주룩주룩 내렸던 비가 뚝 그쳤다. 장모님은 마치 소풍 가는 어린아이처럼 기뻐하셨다.



 큰처제, 막둥이처남, 우리 부부는 대형승용차에 장모님을 모시고 나주로 출발했다. 광주대구간고속도로 순창 IC로 들어갔다 이슬비가 내리고 옅은 안개가 깔렸다. 샛노란 기생초꽃이 환하게 웃고, 누런 밤꽃은 은은한 향기를 내뿜었다. 차는 신바람 나게 잘 달렸다. 막둥이 처남은 광주(光州)를 지나 나주에 들어서자, 내비게이션에 ‘전남 나주시 반남면 대안리’를 입력하고 안내양의 말대로 따라갔다. 홍어축제장으로 이름난 영산강이 보였다. 황포돛배가 있다는데 보이질 않았다. 변두리로 나가 시골길 2차선 도로를 15분쯤 달리니까 ‘반남면’ 도로 표지판이 눈에 띄었다. 조금 더 가니까 안내양이 목적지에 다다랐다고 말하자 모두 탄성을 터트렸다.        

 

 먼저 눈에 띄는 교회당으로 갔다. 대안교회였다. 목사님을 만나 마을이름부터 확인했다. 교회당 마을은 ‘안산’이고, 먼저 교회당 자리에 회관이 들어섰는데 그 마을은 ‘풍동’이었다. 장모님께서 태어나신 곳은 바로 ‘풍동’ 마을이다. 들판의 논과 마을 뒤 대숲, 논 가운데 우물 등은 70년이 지나도 똑같으나, 마을의 집은 줄었고 모양이 다 변했다며, 사방을 둘러 보셨다. 장모님은 좋아 어쩔 줄 모르셨다. 마을 사람은 장모님 뒤의 세대들이고 외지에서 이사와 사는 이도 많을 것이다. 조선 전기의 학자인 길재가 “산천은 의구(依舊)하되 인걸(人傑)은 간데없네.”라고 읊은 옛시조가 맞구나 싶었다.



 장모님이 허리가 편찮으셔서 빨리 오래 걷지를 못하시는데도, 앞서 가시며 옛 생각과 기억을 더듬어 옛집을 찾으신 게다. 제일 마지막 푸르스름한 집인 것 같다고 하셨다. 집 뒤에 대나무밭은 그대로고, 집 옆의 미나리꽝은 이웃집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 공터로 쓰고 있다. 그 마을에서 태어나시고 지금까지 살고 계신다는 이웃집 할머니를 뵈러 갔다. 그분은 치매가 심해 대화도 못 나누고 그냥 나왔다. 여든이 다 된 여자 노인이 우릴 보고 골목으로 나오셔서 궁금증이 풀릴까 했는데, 마을에 산 지가 30년이 조금 넘었다고 해 실망했다.    


 옛 우물물은 넘쳐 빨래도 하고, 흘러내리는 물로는 논농사도 지었다고 하셨다. 언제 심었는지 노거수(老居樹) 한 그루가 우물을 지키고 있었다. 지금은 둥근 우물을 쌓아 올려 뚜껑을 덮어놓은 채로 보존하고 있었다. 뚜껑을 열고 우물 안을 들여다보았다. 교회 종탑은 우뚝 서서 대안리 등대 노릇을 해왔을 게다. 종탑 밑에는 옛날에 쳤던 큰 종이 전시품처럼 놓여 있는데 지금 매달린 종과 똑같았다. 마을의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듯했다.



 장모님은 풍동마을에서 태어나 1년이 지났을까 부모님과 일본 오사카로 가셨다. 초등학교도 다니며 생활하시다 16세 때 귀국하셨다. 21세에 결혼해 광주 송정리에다 신혼살림을 차리셨다. 바로 다음해 6.25 전쟁이 일어나자 작은어머니와 같이 광주에서 100리가 넘는 길을 밤을 새워 고향으로 피난을 오셨다고 한다. 그 뒤 얼마 동안 머물다 고향을 떠나신 지 70년 만에 찾아오신 게다. 얼마나 감회가 남다르실까?

 

 장모님은 매사에 긍정적이라 환한 얼굴이시지만, 오늘은 아흔이라는 연세를 감추시고 고향을 찾는 기쁨으로 싱글벙글하신 게 아닌가? 마치 소녀 같으셨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이 실감났다. 장모님의 작은 소원이 이루어져 모두 만족한 건 큰처제가 서둔 공이다. 그 수고와 노력이 고마웠다. 이제 장모님의 남은 큰 소원인 ‘자라신 곳 찾기’도 이루어지면 좋겠다. 5남매 부부가 장모님을 모시고 일본 오사카를 다녀오길 꿈꾸어 보고 싶다.  

                                                              (2019. 6. 7.)    

※ 쌈터 : ‘태어난 곳’의 전라도 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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