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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사인여천과 타인능해
사인여천과 타인능해
    
       (조선일보 2015   6  23게재)

전남 구례 운조루(雲鳥樓)는 꽤 알려진 곳이다. 1776년 낙안군수를 지낸 유이주(柳爾胄) 선생이 지은 집으로 조선 선비 가옥의 멋이 잘 보존돼 있다. 이 집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한옥 그 자체가 아니라 마당에서 안채로 들어가는 헛간에 놓여 있는 뒤주다. 원통형 뒤주의 아랫부분에는 사각형 마개가 있다. 그것을 열면 쌀이 솔솔 쏟아진다. 바로 옆에는 더 큼지막한 사각형 뒤주가 있다. 작은 뒤주의 쌀이 떨어지지 않도록 미리 채워놓는 창고 역할을 하고 있다. 원통형 뒤주 마개에는 이런 글자가 새겨져 있다. '타인능해(他人能解·다른 사람이 열어도 된다)', 즉 아무나 쌀을 가져가도 된다는 뜻이다. 운조루 주인들은 매년 쌀 30여 가마를 이렇게 배곯는 이웃을 돕는 데 썼다. 놀라운 것은 뒤주가 있는 위치다. 구걸하는 이들의 심정을 고려해 사람들 눈에 제일 안 보이는 자리에 놓아둔 것이다.

운조루의 굴뚝은 1m 남짓으로 특이하게 낮다. 밥 짓는 냄새가 가난한 주변에 퍼지지 않도록 한 것이다. 사람은 사흘 굶으면 김 모락모락 나는 밥에 환장(換腸)하고 만다. 동학란과 6·25전쟁 때 그들을 지킨 건 이웃이었다. 이웃들은 누군가 해코지하려면 앞장서 "이 집만은 안 된다"고 막아섰다. 운조루 사람들은 '복지(福祉) 의병'인 셈이다. 나라가 할 일을 대신 했으니 그런 호칭을 받아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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