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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신문]‘땅콩 항공’과 운조루의 ‘타인능해’
<보리수염 칼럼>
조영창 명예주필
여민컴 대표
전남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에 운조루(雲鳥樓)라는 고택이 있다. 조선조 영조때 낙안군수를 지낸 안동 출신의 류이주(柳爾?)가 지은 집이다. 운조루가 들어선 터는 ‘조선의 풍수’를 지은 일본의 풍수지리학자 무라야마 지준의 글에도 소개될 만큼 널리 알려진 명당이라고 한다. 

운조루는 6·25 한국전쟁이란 참혹한 전란에도 불타지 않았다. 한국전쟁은 동족간 내전 성격의 전쟁이었고,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전쟁이었다. 지리산 일대는 한국 빨치산들의 메카로 한국전쟁 시기 전후 부자들의 피해가 가장 심했던 지역 중 하나였다. 그만큼 이 일대 부자들은 재산을 제대로 보전하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운조루는 살아남았다. 

참혹한 전란의 와중에도 운조루가 살아남은 이유는 무얼까. 동양학자 조용헌은 ‘백가기행(百家紀行)’이란 책에서 두 가지 이유로 설명했다. ‘타인능해(他人能解)’란 글귀가 새겨진 통나무 쌀뒤주와 노비 해방 때문이란다. 

운조루의 이 쌀뒤주 아래쪽엔 가로10cm, 세로20cm 구멍이 있고 이 구멍을 여닫는 나무 마개에 ‘타인능해’란 글귀를 써놓았다. ‘타인능해’는 아무나 이 쌀뒤주를 열 수 있다는 뜻이다. 굶주린 사람이면 누구나 이 뒤주를 열고 쌀을 퍼갈 수 있게 한 것이다. 쌀 2가마 반이 들어가는 뒤주가 비면 주인이 다시 쌀을 채워놓았다고 하는데 보통 열흘에 한 번꼴로 채웠다고 한다. 1년에 100가마 가까운 양이었다. 

운조루 주변에는 25가구, 100여 명의 노비들이 모여 살았다. 모두 운조루에 딸린 노비들이었다. 노비제도는 조선이 망하면서 사라졌지만 실제는 일제강점기에도 지속됐다. 하지만 운조루는 1944년 무렵 노비들을 해방시켜 양민으로 살도록 했다. 이로 인해 운조루는 해방이후부터 한국전쟁 시기 좌익에 가담한 노비집안 후손들의 옹호에 힘입어 전란의 화를 피할 수 있었다. 

‘타인능해’ 쌀뒤주를 가진 운조루와 주변 1백리 안에 굶는 사람이 없도록 하라고 한 경주 최 부자집은 노블리스 오블리제(명예로운 직위에 따르는 도덕적 의무)를 실천한 대표적 부자집으로 회자된다. 그만큼 두 집안은 자녀 교육에도 철저했다. 운조루는 ‘타인능해’ 쌀뒤주를 며느리가 관리하게 하고 뒤주에 쌀이 남으면 ‘덕이 부족한 탓’이라며 한탄했다. 경주 최부자집도 며느리들에게 3년간 무명옷을 입혔다고 한다.

대한항공은 최근 ‘땅콩 회항’ 사태로 최악의 난기류에 휩싸였다. 오너 3세가 1등석 땅콩 서비스 문제로 이륙준비를 하던 항공기를 되돌리고 서비스 직원을 비행기에서 쫓아내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 신뢰도가 여지없이 추락했다. 당사자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에 대해 검찰은 구속영장 청구를 검토하고 있다. 항공보안법 및 항공법 위반·위력에 의한 업무방해 등 혐의다. 국토교통부도 대한항공에 대한 운항정지와 과징금 부과를 준비하고 있다. 

여기에 정부는 국영항공사란 오해를 부르는 ‘대한항공’이란 항공사 명칭 회수까지 검토하고 있다. 대한항공 대신 ‘땅콩 항공’이나 ‘조씨 항공’으로 회사 명칭을 바꿔야할 지도 모르겠다. 오너 3세의 그릇된 행동에 이어 증거인멸 시도, 허위진술 강요, 초점을 벗어나고 시기를 놓친 사과 등 대한항공의 사후 대처도 도마에 올랐다. 한마디로 개인회사보다 못한 위기대처 능력으로 거대 재벌회사가 누란의 위기에 처한 것이다. 

대한항공의 ‘땅콩회항’ 파문을 보면 한국 재벌들의 자녀교육이 운조루나 경주 최 부자집 등 예전 부자들에 비해 훨씬 뒤진 것으로 확인된다. 기실 자식농사는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다. 일반인은 차지하더라도 유명인 가운데 호부견자(虎父犬子)-아비는 범인데 새끼는 개, 아버지는 훌륭하나 아들은 그렇지 못함-로 인해 망신살이 뻗친 인사가 수없이 많다. 

자식농사가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 해도 자식에게 부를 대물림하겠다면 그만한 자질과 소양을 갖추도록 하고 책임감도 가르쳐야 했다. ‘땅콩 회항’사태를 빚은 대한항공만 해도 1만8천여 명의 직원이 소속돼 있다. 그들에 딸린 식솔들까지 합하면 수만 명의 생계가 걸려있다. 하지만 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조현아 전 부사장은 대한항공 직원들을 머슴 취급했다. 조 전 부사장이 만약 노비를 해방한 운조루의 주인처럼 직원들을 대우했다면 ‘땅콩 회항’사태가 이처럼 악화되지 않았을 게다. 

흔히 창업보다 수성이 더 어렵다고 한다. 한국의 재벌들도 3세로 넘어가면서 창업세대나 2세들과 비교하면 치열한 도전 정신이나 창의성이 떨어지는 모습이다. 3세들이 기껏 벌이는 사업 대부분이 골목상권을 노리는 경우가 대부분인데서도 이는 확인된다. 

철학자이자 작가인 칼릴 지브란은 “돈은 사랑과 같다. 이것을 잘 베풀려 하지 않는 이들을 천천히 그리고 고통스럽게 죽인다. 반면 타인에게 이것을 베푸는 이들에게는 생명을 준다”고 했다. 조 전 부사장은 땅콩을 던질 게 아니라 나눔과 배려의 ‘타인능해’ 정신으로 직원들에게 지갑을 열었어야 했다. 대한항공뿐 아니라 한국의 재벌들은 ‘땅콩회항’사태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자식농사를 제대로 짓든가, 아니면 부의 대물림을 포기하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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