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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조선 제일의 택지 운조루-송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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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무 속에 새가 깃들어 살았다'

송기옥/수필가


<土 曜 隨 筆>'조선 제일의 택지 운조루(雲鳥樓)'

가족과 함께 경남 하동포구 섬진강변 매화 마을을 찾았다. 가파른 산등성이에 온통 매실나무를 심어 꽃동산을 이뤘다. 흐드러지게 핀 매화 꽃 향내에 취해 가도가도 이어진 꽃길을 걷다보니 나는 어느새 무릉도원의 신선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넓은 황금 모래밭 사이로 맑은 물이 쉴 새 없이 흐르는 섬진강에는 물오리 한 쌍이 자맥질을 하며 새봄을 맞아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길 하나로 경상도와 전라도가 갈라지는 화개장터를 지나 웅장한 지리산을 배경으로 깊숙이 묻혀있는 전남 구례군으로 들어섰다. 국도 변에 ‘운조루’라는 팻말을 무심코 지나쳤다가 되돌아가 찾아 들었다.



                                                                           (지리산과 섬진강 )

이 집은 200여 년 전(영조52년 서기 1776년) 경상도 안동 출생인 류이주(柳爾冑1726-1797)라는 사람이 순천부사 때 전남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五美里)에 7년에 걸쳐 99칸 집을 지었다.


류이주는 100여명의 식솔을 거느린 대 부호였는데 그도 부족하여 종친들까지 불러 모아 집성촌을 이루어 살았다는 양반가이다. 지금은 73칸만 남아있으며 조선시대 선비의 성품을 상징하는 品자 형으로 배치한 영남 선비들이 주로 선호하던 조선후기의 양반집으로서 중요민속자료 제8호로 지정되어 있다.




                                                      (운조루 안채)
▲ 운조루는 서기 1776년(영조52년) 경상도 안동 출생인 류이주가 순천부사 때 전남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五美里)에 99칸 집을 지었다.  
집 뒤에는 삼신산(한라산, 금강산)의 하나인 지리산 노고단(1,507m)의 웅장한 험산준령을 타고 내려온 형제봉 끝자락이 마을을 둘러싸고 집 앞에는 내수구(內水口)를 따라 맑은 물이 졸졸 흐르며 드넓은 들이 펼쳐져 있고 더 멀리에는 외수구(外水口)인 섬진강 맑은 물줄기가 넘실댄다.

이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서 무릎을 탁 치며 “아, 여기가 내가 살 조선제일의 택지(宅地)로구나!”기뻐하며 금환낙지(金環落地=천장에서 옥녀가 금가락지를 떨어뜨린다는 터) 터에 새로운 둥지를 틀었다.

처음 집터를 닦을 때 어린아이 머리만한 돌 거북이 나왔다고 하여 금귀몰니(金龜沒泥)즉 진흙에 빠진 금 거북처럼 천년을 장수하며 부귀다남 한다는 남한의 3대 길지로 알려지게 되었으며 가보인 돌 거북은 1989년에 도난을 당했다고 한다.  




                                                             (삼수갑산 호랑이)
운조루의 또 하나의 가보로는 홍살문에 걸려있는 호랑이 뼈다. 류이주가 평북 병마절도사로 부임하면서 삼수갑산을 넘을 때 호랑이를 만났는데 기록에 의하면 채찍으로 때려잡아 모피는 영조대왕에게 바치고 뼈는 잡귀를 막기 위해 운조루 홍살문에 걸어 두었다는 것이다.

호랑이를 때려잡은 류이주는 영조대왕으로부터 박호장군이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고, 호랑이 뼈가 만병통치약이라며 특히 남편의 바람기를 잡는데 효험이 있다는 소문에 인근 여인네 들이 조금씩 갉아가는 통에 가보인 호랑이 뼈도 수난을 당했다고 한다.

 





                                                                  (솟을 대문루에 걸린 호랑이 뼈)
류이주는 집 앞 구만들(九萬坪) 이름을 따서 귀만(歸晩)이라는 호를 지었고 원래는 이 집을 귀만와(歸晩窩)라고 불렀다고도 한다. 류이주가 벼슬에서 물러나 뒤늦게 돌아와 기거한 집이란 뜻이다.

운조루 라는 이름은 "운무 속에 새가 깃들어 살았다."는 중국의 도연명(陶淵明)이 지은 귀거래혜사(歸去來兮辭)에서 따온 두 글자로 '구름은 무심히 산골짜기에 피어오르고, 새들은 날다가 지쳐 둥우리로 돌아 오네'라는 첫머리 두 글자를 따서 지었다고 한다.  

운조루 들머리엔 솟을대문이 연결된 좌우 一자형으로 길게 늘어진 행랑채는 담을 대신하여 건조된 건물로 오가는 나그네와 식객, 일하는 머슴들이 기거한 여러 개의 방으로 꾸며져 있다.
(류이주의 초상화)
바깥사랑채, 안 사랑채, 아래 사랑채 등으로 각기 누마루가 있었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헐려버려 현재 남아 있는 집의 건평은 120평으로 T자형 사랑채와 ㄷ자형 안채, 그리고 앞마당의 곳간 한 채가 팔작지붕, 박공지붕, 모임지붕으로 연결된 구조로 되어있다.
우리 부부는 그 옛날 운조루의 집주인이 된 것처럼 집안을 돌아보다가 행랑채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사랑채 누마루에서 기념 촬영을 하였다.

이 집에는 특이한 전통이 있는데 두 아름쯤 되는 통나무 속을 파낸 목독(통나무 쌀독)에 쌀을 가득 채우고 목독 하단부 마개에는 타인능해(他人能解=아무나 열 수 있음)라고 쓰여 져있는데 가난한 이웃사람이나 오가는 나그네가 한 끼 정도의 쌀을 마음대로 가져갈 수 있도록 하여 적선을 하였다 한다.




                                                                   (나눔의 쌀독)
류씨 문중의 자랑으로 전해오는 이 나눔 정신은 오늘날 불우한 이웃을 잊어버리고 자기만 배불리 사는 허다한 현대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1894년 동학란이 일어나 탐관오리들의 매관매직과 외세에 대한 항거로 온 나라가 혼란에  빠졌던 동학농민혁명을 무사히 벗어날 수 있었던 것도, 일제에 머리 숙여 자기 재산만을 보호하며 동족을 핍박했던 매판세력과 독립운동가 들의 살벌했던 일제 강점기의 갈등도, 가난한 동족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인민의 피를 빨아 부자가 되었다며 부자를 무조건 처단했던 동족상잔의 6.25 등 숱한 민족의 수난을 겪었는데도 200여 년 동안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않고 지금까지 그의 10대 손이 이 집을 보존해온 운조루와 류씨 가문이 거저 기적을 이룬 것이 아니었다.

솟을대문 밖에는 연지(蓮池)가 조성되었는데 앞산 계족산(谿足山)을 바라보고 있다. 일명 닭발산 이라 불리는 이산은 불기가 강하니 연지에 물을 가득 채워 물을 흐르도록 하여 화기를 막자는 뜻이란다.

줄행랑 입구에는 양산을 쓰고 쪼그리고 앉아 관람료를 받는 젊은 여인네는 아마도 류이주의 10대 후손 며느리 인가 보다. 선조가 200년 전 유산으로 물려준 유덕의 값을 받고 있다고나 할까?


 
 

                                                                  (운조루 줄행랑 )

문밖을 나오는데 동네 할아버지한테 들었다면서 저 앞에 또 하나의 오래된 부잣집이 있다는 딸아이의 귀띔이다. 발길을 그 집으로 옮겼다.

사람의 머리통 만한 둥근 돌로 담장을 금가락지처럼 원형으로 삥 둘러 견고한 작은 성처럼 쌓았는데 높이는 3m정도로 집안을 들여다 볼 수도, 들어갈 수도 없는 담쟁이 넝쿨만이 무성하게 기어올라 철옹성 같아 왠지 냉기가 감돌았다. 솟을대문 밖에는 안내문이 새겨져 있는데 '금환낙지 곡전제 춘해루(穀田齊 春海樓)'라고 쓰여져 있다.      

이 집은 1929년 박승림과 1940년 이교신이라는 사람이 건립한 집이라고 한다. 사랑채는 一자형으로 배치되어있고 중문 사랑채를 거쳐 안채는 부연을 걸어 지은 현대 감각의 미를 살린 높고 큰 고래등 같은 박공 기와집인데 사람이 살고 있었다.
(봄을 기다리는 설중매)

이 집도 조선조 말, 일제 강점기를 거쳐 100여 년이 된 오래된 집이다. 천석꾼의 집이라고 하니 아마도 이 마을 터가 부자가 나는 길지 인가 보다. 운조루는 널리 알려져 있지만 '춘해루'라는 이 집은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무얼까?

낭랑 18세 소녀의 부푼 가슴처럼 망울망울 맺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도로변의 벚꽃나무 가지 사이로  봄의 따사로운 햇살에 아지랑이가 가물댄다. 저 멀리 하동포구 팔십 리 섬진강변 백사장을 뒤로한 채 운조루와 춘해루에 얽힌 사연을 생각하며 귀가길을 서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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