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만들은 백두대간의 서남쪽 가지인 지리산맥 남녘에 자리잡고 있다. 일제시대 이후 이 땅맥을 소백산맥이라고 불러 왔다.
소백산맥 남발은 전라북도 진안부터 광양까지 꽤 높은 산들이 솟아 있다. 따라서 남부지방의 지붕으로 일컫는다. 이 산사이를 흘러내린 물줄기는 섬진강이다. 진안고원에서 비롯한 이강은 굽이굽이 큰 산들을 휘감이 흐른다. 지형학에서는 이런 하천을 '감입곡류천'이라고 한다.
섬진강은 옛날부터 벽계수로 소문났고 은어를 비롯해서 깨끗한 물에서만 자라는 물고기들의 천지였다.
섬진강유역은 우리 나라에서 강수량이 가장 많은 곳이다. 특히 여름철에 내린 집중호우는 강물을 크게 불어나게 해 평소보다 7백배에 이르도록 한다. 이러한 하상계수는 우리 나라 하천중에서 최대수치이다.
흔히 큰 하상계수로 살필 때 홍수를 생각하지만 섬진강유역의 들녘은 좀 다르다. 영산강 유역과 같은 대평원이 거의 없는 대신 계곡을 타고 내린 샛강과 본류가 만나는 곳에 산록들이 부채골 모양으로 널려 있다. 좀 넓은 곳은 '분지'라고 부른다. 이런 분지에는 제법 규모가 큰 동네가 앉는다. 임실, 남원, 곡성, 그리고 구례와 같은 군청소재지들이 그런 동네들이다.
구만들은 구례읍내 동녘으로 노고단(1705m)으로부터 흘러내린 덕은내(토지천)와 섬진강이 만나는 곳에 있다. 서시천과 만나는 구례벌보다 규모가 작아 토지면의 소재지터로 되었다. 한참 아랫 물녘인 하동 평사리와 닮은 듯 하다.
이런 곳들이 일찍이 섬진강 유역에서는 살만한 땅으로 점찍어진 곳이다. 때문에 구만들도 삶터로 소문나서 풍수지리가들이 금환락지로 꼽았다. 땅이름을 따라 길지로 뽑힌 이곳은 씨내림이 왕성해서 '종자들'이라는 별명도 있다. 생산력이 풍부한 이땅의 생성내력을 살펴보자.
지질시대상 이곳은 고생대 영남육괴의 지리산편마암복합체 또는 소백산편마암복합체이다. 이 복합체는 편마암화 정도가 강하고 화강암의 관입에 따른 화강암화작용 및 잇달은 변성작용으로 이루어졌다. 이들 편마암류는 니질암(泥質岩) 또는 사질암(砂質岩)기원, 또는 염기성암 기원으로 된 변성암이다.
이 변성암은 전라남도에서 최고기(最古期) 기반암으로 고생대후기 퇴적암류, 중생대 백악기 퇴적암류와 화성암류, 제4기 충적층의 기반지질을 이루며 중생대 백악기의 반심성 또는 심성암류에 의해 관입 당하고 있다. 구만들은 지리산맥이 배후산지이다. 따라서 지리산맥의 땅족보와 끈이 맺어 있다.
지리산맥은 중생대 후대동기 조산운동이란 한반도에 있었던 큰 지각변동 뒤인 제3기 곧 신생대의 첫무렵부터 그 중간 무렵까지 일어난 단층작용으로 이루어진 산이다. 이 산은 그 뒤로 제4기에 이르는 동안에 한때 화산활동이 있었으나 지각운동은 거의 없었다.
이 때문에 바람, 물, 얼음 따위가 바위나 땅을 깎아 닳게 하는 삭마작용을 심하게 받아 높고 낮은 기복이 아주 적은 노년기성 지형을 보인다. 더욱이 온 산이 섬록암과 화강암반으로 이루어져 땅껍질이 충분히 풍화되어 좋은 토양을 갖고 있다. 능선과 암석지대를 빼고나면 땅바닥이 깊을 뿐만 아니라 부식물이 많고 공기가 잘 통하며 물빠짐이 좋아서 농사짓기에 이롭다.
노고단에서 왕시리봉(1243m)과 형제봉(912m)으로 내린 두갈래 멧밭 사이는 '덕은내'골이다. 이 냇물은 우금을 타고 흐르다가 '대골'을 벗어나면서 부채골 모양의 사면을 타고 흐른다. 반경 2킬로나 되는 이 질펀한 자드락은 세망류(細網流)로 흘렀고 물길도 자주 변했다. 땅켜로 보아 대부분 충적층이다. 이 쌓인 땅의 기원을 무엇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들판의 땅족보가 밝혀진다.
땅은 침식되고 여러 요인으로 운반되어 퇴적한다. 꼭 깎이지 않더라도 중력방향으로 약간씩 이동한다. 이른바 포행(圃行)이나 솔리플럭션(soliflaction)작용이다.
땅은 빗방울이 충격을 주면 흙 표면의 틈(空隙)이 메워져서 토양의 투수율이 낮아져 지표 유출이 증대되어 토양 침식이 활발해진다. 이런 유수(流水)에 의한 침식작용의 운반물들이 구만들녘에 쌓였다면 지형학의 용어로 선상지(扇狀地)지형이라고 한다.
지리산록 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에 있는 높은 산의 계곡 밑에는 형태상 부채골 사면이 더러 있다. 모두 선상지로 단정할 수 없고 신중을 기해야 한다. 이곳도 아직 덕은내 물이 만든 땅이라고 여기기에 이르다. 들녘끝인 봉소마을은 섬진강가로 작벼리와는 비고(比高) 5m쯤 높다. 이 땅의 두께는 강변에 노출된 절단면인 노두(露頭)를 관찰해보거나 지질토를 통해서 충적층이 분명하다. 이곳은 덕은내보다는 섬진강에 의해 형성된 땅이다.
오미리, 구산리에 있는 들판에 덮여 있는 퇴적물과 파도리 '등평들'의 모양은 선상지 지형을 닮았다. 박승필 교수는 형성요인을 채 밝히지 못한 부채골 모양의 이런 지형을 통틀어서 '선상지형산록완사면'(扇狀地形山麓緩斜面)이라고 했다.
외적인 지형 형성요인은 물(流水), 얼음(氷河), 바람(乾燥)등이 있다. 형태를 보고 형성요인을 밝힌다면 과거의 기후를 알 수 있다. 구만들의 땅이 빙하에 의해 운반된 땅이라면 빙하시대인 신생대 제4기 플라이토신에 만들어졌고 바람에 의해 퇴적된 흔적이 있다면 건조기후하에 생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이곳 각지에서 채굴을 통해 퇴적물을 수집하여 정밀한 분석을 통한다면 구만들의 땅족보를 정확히 밝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