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소개한 여러자료에서 청학동이란 어떤 곳을 이르는가 어렴풋이 이해했을 것이다. 서양사람들의 에덴의 동산이나 중국의 무릉도원이나 인도의 녹야원은 모두 한국사람들이 생각하는 청학동과 거의 같다고 할 수 있다. 청학동을 찾아 몸을 숨긴 가장 오래된 사람은 신라가 망할 무렵의 최치원(崔致遠?857∼?)을 들 수 있다. 조선 선조때인 1619년 하동 악양에서 먹글씨가 마르지 않은 최치원의 싯귀가 발견되었다고 소동이 날 정도로 지리산에 숨어 신선이 되었다고 전해 온다.
3백년쯤 뒤인 고려 명종때 사람 이인노(李仁老)도 지리산에 청학동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찾아나섰던 얘기를 그의 글 ≪破閑集≫(파한집)에 남겼다.
<지리산은 두유산이라고도 한다. ?? ?? ?? 옛날 노인들 사이에 전해오기를 「지리산에 '청학동'이 있는데 길이 아주 좁아 사람이 겨우 지나 갈만하다. 기어서 수십리를 가면 아주 넓은 곳에 다다른다. 주위가 모두 기름진 땅이나 씨뿌리고 나무심기에 알맞다. 그안에ㅔ 푸른 학이 살아 청학동이라 한다. 옛날에 은둔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살던 곳으로 허물어진 담과 무너진 구덩이가 아직도 가시덤불속에 있다」고 한다.
나는 나의 당형 최상국이 세상과 인연을 끊고 은둔의 길에 나설 뜻이 있는지라 같이 이 골짜기를 찾기로 했다. 소 두세필에 죽통을 싣고 나섰다. 화엄사를 지나 화개현에 이르러 신흥사(神興寺)에서 묵었다. 지나는 곳마다 선경아닌 것이 없었으니 천암만학이 다투어 솟고 다투어 흐르며 대울타리와 떼집이 복숭아 꽃과 살구꽃에 어른거려 정말 사람 사는곳이 아닌 듯 했다. 그러나 끝내 청학동은 찾지못했다. 나는 신흥사 계곡 바위에 싯귀를 새겨놓았다.
'두유산은 높고 저녁구름 낮으니
만학천암이 중국의 회계산 같도다.
지팡이 짚고 청학동 찾고자 하나
숲이 가려 부질없이 흰원숭이 웃음만 듣누나.
누대가 아득히 삼산은 멀고
이끼끼어 청학동천 글씨 넉자만 희미쿠나
묻노니 선원이 어느곳이뇨.
낙화유수만 사람을 어지럽히는도다'>

그는 이 싯귀와 함께 중국의 도원기(桃源記)를 덧붙여 적어놓고 진나라 유자기란 사람도 옛사람들 말따라 도원을 찾아 나섰다가 찾지못한 고사를 들어 자신의 부질없음을 자위하고 있다.
청학이란 새는 본디 환상의 새이다. 중국책 ≪拾遺記≫(십유기)에는 이 새를 묘사하고 있는데 '부리가 있고 머리는 사람 같고 날개가 여덟이며 발이 하나고 털빛이 꿩털빛같되 신선이 타고 하늘을 나를 수 있으며 한번 울면 천하가 태평해진다'고 되어 있다. 그러므로 청학이 있는 곳은 신선이 사는 곳이며 그곳은 태평천국이다. 보통 학도 천년을 산다는데 학중의 왕인 청학은 천세만세를 산다는 관념이다.
조선왕조 연산군 때 무오사화 피해로 유명한 김일손(金馹孫?1464∼1498)도 청학동을 찾은 기록이 있다. 그는 하동 화개골짜기의 불일암을 찾아가 이곳 스님으로부터 '몸둥이가 푸르고 목이 붉고 다리가 긴 새떼들이 6월이면 이 암자곁 학연(鶴淵)에서 목을 축인다'는 말만 들었을 뿐 확인하지 못했다.
화개사람들은 이곳 계곡을 청학동으로 믿는다. 쌍계사(雙溪寺)란 '두 시내사이에 있는 절'이란 뜻이지만 이곳 사람들은 쌍학형국을 이뤘고 이 절을 지나가야 청학동을 찾아갈 수 있기 때문에 절 어귀에 <石門>이라고 각자된 돌문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 절 위 불일암 곁에 있는 폭포를 '청학동 불일폭포'라고 부른다. 김일손의 얘기를 사실화 한 것일뿐 이곳 스님이 김일손에 설명한 학은 일반 두루미와 새일뿐이지 중국 <십유기>에 나오는 청학과는 너무나 다르다.
김일손보다 2백년쯤 뒤의 인물 이규경(李圭景?1788∼?)이란 사람도 김일손과 같이 화개계곡에서 청학동을 찾으려고 헤맨 기록을 남겼다. 그가 쓴 ≪五洲衍文長箋散稿≫(오주연문장전산고)에 보면 그도 김일손처럼 신흥사가 있던 신흥리를 거쳐 그보다 더 윗쪽 대성리 영신사 일대를 둘러 보았으나 찾지 못했고 겸암 유운룡은 세석평전을 청학동이라고 생각한 듯 싶은 글을 남겼다.
이 두 사람보다 앞서 김종직(金宗直?1431∼1492)도 청학동을 찾아 지리산 남쪽 기슭을 찾아 헤맨 기록이 있다. 그가 지리산을 돌아보고 쓴 ≪頭流錄≫(두류록)에 보면 연곡사 계곡을 따라 오르면서 내동리 일대를 뒤졌으나 찾지 못했다.
이밖에도 고려왕조가 망하고 새왕조가 일어서는 격동기에 살았던 이직(李稷?1362∼1431) 이첨(李詹?1345∼1405)등도 청학동에 대한 글을 남겼으며 김종직?김일손 등과 같은 시대의 사람, 이륙(李陸?1438∼1498) 성현(成俔?1439∼1504) 등도 청학동에 관심을 가진 기록들이 있다.
재미난 것은 ≪신증동국여지승람≫이 청학동의 위치를 명확히 기록했다는 점이다. 이 책 <진주목> 항목에 보면 '청학동은 진주에서 서쪽으로 1백47리에 있다'고 못 박고 있다. 이곳은 오늘날 불일폭포주변을 이른것같다. 이 대목 때문인지 1618년 나주에서 태어나 중이 된 침굉스님(尹縣辯?枕宏)은 불일암을 중심으로 <청학동가>라는 글을 남겼다.

<지리산 청학동을 예듣고 이제보니
최고운 종적이 처처에 완연하다
향로봉 속종호매 기암은 극수하고
괴석이 쟁영하야 송백조차 창창한데
삼천자 옥류는 구천에서 들리난 듯
그 밑의 석지에 일광이 침파하며
산영담겼거든 백운홍수갓 청학 한쌍은 한왕한래 하노라
이 가운데 승사를 나혼자 알았으니
나 혼자 낙낙담하여 불각에 교수하고
낙하중 망지외에 호산고봉은 반유반무하노메라
완포대취셔 올라 불일암 주각은
백암반의 나파꺼든 전신이 현란하고
옥탑최의한데 백납한승은 선홍이 못내겨워
옥통에 향을 꽂고 일성금반을 만학동에 올리노니
아희야 요설을 말고야 탐승소인이 두렵다.>

남쪽으로 광양 백운산 삼봉을 바라볼 수 있는 지리산 남쪽의 골짜기는 다섯을 들 수 있다. 제일 남쪽 골짜기가 오늘날 청학동이라 하여 '갱생유도회'신도들이 모여 사는 경남 하동 청암면 횡천강 계곡이다. 강 이름이 말하듯이 이 골짜기는 동쪽으로 흐른다고 횡천이라 했으며 횡천면에 이르러 남쪽으로 고개를 돌려 하동읍내 밑 섬진강 강구로 흐르기 때문에 광양의 백운산 삼봉이 보이지 않는 곳이다. 오늘날 이곳을 '도인촌'이니 '청학동'이니 따위로 부르지만 이중환(李重煥)은 이보다 남쪽 산너머 악양면 매계리(梅溪里)를 청학동으로 보았다. 물론 도인촌이라는 묵계리(默溪里)에는 '학동'이라는 은둔촌이 있었다.
광양 백운산 주봉은 1,218미터로 지리산 남쪽기슭에서 바라볼 때 세 봉우리는 주봉인 신선대와 동쪽 다압면 경계를 이루고 있는 매봉(867m), 서쪽의 간전면 경계 또아리봉(1120m)이다.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 '도인촌'에서는 중간에 악양면과 화개면 경계에 있는 해발 1115미터의 형제봉에 가려 전혀 보이지가 않는다. 다만 지리산 남쪽 골짜기가운데 가장 길고 깊을 뿐이다.
두 번째 골짜기는 비록 짧지만 하동읍에서 화개에 이르는 중간목에 있는 악양면(岳陽面)계곡이다. 이 골짜기 중기리(中基里)에 '청학골'이라는 곳이 있으나 앞서 밝혔듯이 계곡의 맨 윗쪽에 있는 '매곡'을 이중환은 청학동으로 보았다. 이곳에 '만수동'이 있고 최고운 글씨가 나왔다. 역시 이곳에서도 백운산 삼봉은 동남쪽으로 보여 백운산 삼봉을 정방으로 볼 수가 있다.
나침반을 놓고 앞산인 백운산 삼봉이 정방이고 壬子 또는 子坐에 맞는 집터자리는 화개골짜기일 수 밖에 없다. 실제로 현지를 답사해 보면 쌍계사나 불일암에서는 백운산이 보이지 않고 훨씬 더 윗쪽인 의신리나 대성리 쯤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이 탓으로 김일손이나 유운룡 등 선인들이 이 계곡을 찾아 헤맸던 것을 알 수 있다.
김종직이 찾아간 내동리 골짜기는 피아골로 이름난 연곡사 계곡이다. 나침반을 놓고 따지자면 화개골짜기보다는 이 계곡이 내동리를 거쳐 '농평'이라는 산마루 동네에서 바라보면 백운산 삼봉이 이곳만큼 정방으로 보이는 곳이 없다. '귀를 막고 산다'는 뜻의 이곳은 해발 9백미터에 달하는 높은 고개에 있는 분지마을로 지금도 일곱집이 살고 있다. 이 마을을 거쳐 신흥리나 칠불암을 갈 수 있다. 이 동네는 1918년 큰불이 나서 온 동네가 불타고 네 사람이 타죽어 청학동이 아님이 증명된 셈이다.
다섯 번째 골짜기가 유이주가 들어와 거북돌을 발견한 구만들의 덕은천(德隱川)'문수골'이다. 지금 우리는 이 골짜기 내력을 더듬고 있는 셈이나 백운산 삼봉을 앞산으로 보고 따진다면 서북쪽으로 비켜선 자리이다. 이 탓인지 이곳을 청학동으로 본 사람들은 백운산 제일봉인 신선대를 안산(案山)으로 본 것이 아니라 백운산 신선대에서 서북쪽으로 뻗어 내리다가 맺힌 간전면과 문척면의 경계산인 계족산(鷄足山?703m)을 백운산으로 보았고 이 견해에 따랐음인지 이 산아래에 '백운암'이란 암자가 있다. 물론 구만평의 운조루나 금내리에서는 백운산 신선대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치더라도 일찍이 김일손?김종직 등이 화개나 연곡사 계곡에서 청학동을 찾지못했고 이중환이 동네 고르는 책 '택리지'를 쓸 때 '구만들'이 가장 살만한 지리산 기슭의 시냇마을로 표현했음인지 유이?이전에 손재 박광일(朴光一?1655∼1723)이란 사람이 '문수골'을 찾아 몸을 숨긴 기록이 있다. 그는 광주직할시 광산구 진곡동 출신으로 우암 송시열에게서 배워 글이 뛰어났으므로 왕자사부를 맡았고 종부사주부자리에 있었으나 파당 짓는 사대부들이 싫어 벼슬을 버리고 1711년 지리산에 숨어버렸다. 그는 뒷날 구만들 윗쪽 토지면 중산리에 토막을 짓고 그의 아우와 생활하고 있음이 밝혀져 인근 젊은이들이 글을 배우러 찾아 몰려들었으므로 강학을 시작해 글을 가르치다가 광주의 아들들에게 알려져 4년만에 고향으로 되돌아 갔다.
오미동에 자리를 잡은 유이주의 형인 유이혜(柳爾惠?1721∼1790)가 손재의 학풍을 흠모했던 것으로 미루어 보면 유이주가 오미동을 찾은 것도 이중환의 택리지와 손재 박광일의 행적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근래 최창조 교수는 ≪좋은 땅이란 어디를 말함인가≫라는 책에서 '일상 생활의 경험이란 개인적이고 주관적이다. 그러므로 풍수지리에 대한 논리나 공간의식은 개인에 따라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 진다. 경관이 가지는 개념적인 의의보다 경관을 어떤 문맥으로 접근하는가 하는 문제가 더 중요한 방법론 일 수 있다. 텍스트로서의 경관은 해독자의 문화?사회?역사적 배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러므로 풍수는 당시 사람들의 땅에 대한 인식의 배경과 사회를 가름할 수도 있다'는 내용의 글을 쓰고 있다.
청학동에 대한 관념적인 설명은 한가지이지만 시대에 따라 청학동의 위치가 변해가고 있음을 살필 수 있는 것은 흥미있는 일이다.
92년 동학사가 펴낸 최영주의 ≪신?한국풍수≫란 책 55쪽을 보면 영관출신 풍수지사 수강(秀岡) 유종근씨는 운조루 일대가 비록 청학동은 아닐지라도 '문학과 학자가 간간이 배출될 것이고 입고 먹는 것은 궁색하지 않을 것'이라고 결론짓고 있다. 수강이 말했다는 운조루의 풍수설명은 좀 색다르므로 여기 소개한다.

<소백산맥의 낙맥이 지리산을 만들었다. 지리산 반야봉에서 남쪽으로 뻗어온 용이 형제봉에서 주필산(駐 山)을 이루고 이곳에서 가운데로 뻗어온 맥이 천행치에서 진산을 이루니 바로 주산이다.
왼쪽 시루봉에서 뻗어온 한 맥이 청룡을 만들고 주산에서 내려온 맥이 백호를 만드니 첫눈에 평사낙안(平沙落雁:기러기가 모래밭에 내려앉은 모양으로 금환락지와 같은 뜻)임을 알 수 있다.
또 자세히 살펴보면 금구입수형(金龜入水形:거북이 물에 드는 모습)이 아닌가. 혈(운조루 자리)앞의 내당수는 동쪽으로 나와 서쪽으로 흘러가고(東出西流:이는 윤도주의 좌향이 남향이기에 오행의 상생관계를 뜻한다), 외명당의 섬진강물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러가니 내외수가 서로 반대방향으로 흘러 명국(名國)의 형세를 완벽하게 갖췄다.
여기에다 오봉산이 안산을 만드니 산자수명(山紫水明)하고 용과 물이 장엄하여 가히 대부가거지지(大夫可居之地)다. 청룡이 우람하니 백자천손(百子千孫)할 것이고 주위의 형국을 만든 산이 아름답고 물이 또한 넉넉하니 문필(文筆:문관과 학자)이 간간이 배출될 것이고 입고 먹는 것은 궁색하지 않을 것이다.>

최영주씨는 수강 유종근씨가 만일 구만들일대에 운이 오지 않았다면 언젠가 운이 돌아올 때 틀림없는 유토피아가 될 곳이라고 주장했다는 말을 덧붙이고 <정감록의 청학동은 오미동>이라는 항목으로 다루고 있어 가장 가까운 시대의 기록이라 할만하다.